var articleno = "256";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19호 2018년 10월 18일(목) ~ 10월 24일(수)
영장류 출입금지 -숲의 전설·2
시인/ 권천학
가끔 그 마을에 들러 쉬어가는 새 떼들이 물어내는 정보에 의하면 그곳엔 날짐승 길짐승 땅속 짐승들까지 서로 이웃하며 모두가 모두를 끌어안고 서로 엮여 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치렁치렁 살고 있는데 다만 ‘영장류 출입금지’라는 투명한 녹색 팻말이 서 있다고 한다
위의 시 〈영장류 출입금지〉를 읽고 있으면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닫지 않은 어딘가 첩첩산중 태고의 그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숲을 연상시키고 있다. 또 깊고 깊은 산속 어딘가에 마치 무시무시한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름 모를 숲의 이야기 같다. 숲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이웃하며 한데 치렁치렁 어우러져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시의 하단 결론부분 “‘영장류 출입금지’라는/투명한 녹색 팻말이 서 있다고 한다”에서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금단구역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최후의 경고 같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과 살갗의 세포마저도 순간 쭈삣 서고 서늘한 공포가 느껴진다. 이렇게 느끼는 비밀스런 숲과 공포의 자연에게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들의 성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
하지만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들이 날짐승, 길짐승, 땅속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에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인은 남다른 감성의 예리한 촉을 뻗어 새들이 물어다 주는 정보를 통해 마치 암호 풀어내듯 그들의 언어를 분석하고,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들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에게 경계심을 갖고 ‘영장류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비밀의 숲 입구에 내다 걸었다.
그것은 자기들의 영역을 더 이상 침범하지 말라는 최후의 경고문이다. 그럼 그런 문제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 우린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자연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진화과정에서 까닭 없이 인간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본 피해자다. 인간의 발자국소리, 말소리, 숨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법도하다. 사실 지구상에서 인간만큼 자연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 생명은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유로 먹이사슬을 비롯해서 자연에 대해 무차별적 살육과 살상을 한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그러니 인간은 모든 자연에 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프랑스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근세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자연은 인간을 싫어한다.”라고 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은 정복과 희생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자연에 강제성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문명과 인간은 자연의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위협하고 훼손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권천학 시인은 이러한 인간과 현대사회의 문명이 자행한 일들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생태위기를 부른 원인은 현대사회의 문명적 이기와 탐욕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연 생태 파괴에 관한한 인간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이율배반적 관계에 놓였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자연에 대해 영원한 가해자임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경종과 울림을 주고 있고 에코토피아적 꿈을 꾸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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