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가을겸상

천마리학 2017. 12. 9. 21:24


 


    가을겸상 * 권 천 학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시인


식탁보와 냅킨이 더 새하얗게 보이고

나이프며 포크가 유난히 반짝여 보이는 아침,

그 아침에 스치는 어떤 예감에 멈칫,

커튼을 열었다

갈색 톤의 버버리코트를 걸친 그가 가득, 창밖에 서 있었다

막 당도한 듯,

그의 등 뒤에서

밟고 온 낙엽들이 숨을 바스락 거리고

가을비 끝자락에 젖은 나뭇잎들이 혼곤히 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안으로 모셨다

치즈 얹어 녹인 병아리콩, 아보카드 기름에 익혀 후추를 뿌린 방울토마토,

노릇노릇 구운 통곡 식빵 한 조각과 곁들여진 산딸기 잼,

벗겨먹는 막대치즈, 블랙베리가 들어간 요구르트 그리고

크리스털 물 한 잔

소찬이지만… 조촐하나 풍성한 저의 아침식단입니다 드시지요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없이

짧게 흐르는 심상찮은 침묵,

혹시 입에 맞지 않으신지……?

모신손님의 기색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숙연히 식탁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아, 그렇군요, 모두 다 손수 지어 보내주신 것들이지요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올리지 못했네요

민망하여 크리스털 물 한잔을 들이켰다

목 줄기가 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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