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토 최서남단 전남 신안군 가거도의 송년우체통. 가거도의 그림 같은 환경과 함께 놓인 풍경이 아름다워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사진 신안군청]
2014. 12. 20 ~ 잊었던 1년 전 나를 만나는 날
3 느린 우체통은 영종대교기념관에서 처음 시작됐다.
공항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건립·운영하고 있는 신공항하이웨이의 기획관리팀 김창근(45)씨는 공항 이용자를 위해 1년 후 편지가 배달되는 우체통을 고안했다. 5년의 준비기간 끝에 2009년 5월 영종대교기념관에 느린 우체통 3대를 설치했다. 기념관 안내데스크에 준비된 엽서를 이용하면 발송까지 무료로 해준다. 편지의 경우도 우표를 붙여 가져오면 배달해 준다. 매일 편지를 수거해 보관하다가 1년 뒤 발송하는 작업은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1년에 1만5000통이 모이는 터라 엽서 제작과 보관·발송에 드는 비용만 2000만원에 달한다. 편지를 받아 본 사람들이 다시 영종대교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명물로 자리 잡았다. 내년 초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해 기념관은 당분간 문을 닫는다. 공사가 끝나는 내년 3월께 느린 우체통도 다시 연다. 032-560-6114.
4 조선시대 관청인 우정총국에도 느린 우체통이 있다.
서울 인사동 조계사 옆에 자리한 우정총국은 1884년 고종의 명령에 따라 근대 우정업무가 시작된 곳이다. 광복 이후 채신박물관으로만 활용되다가 지난해 8월 남에게 소식을 전하는 우정국 본연의 임무를 회복했다. 우정사업본부 산하 기관으로 간단한 우편 업무가 가능해진 것이다. 조선시대 관청에 들어가 편지를 보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한 번에 10개 이하의 우편물도 보낼 수 있다. 대신 등기나 소포는 취급하지 않는다. 우정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도 겸하고 있다. 우정총국 입구에 느린 우체통이 놓여 있다. 1895년 기록을 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지가 도달하는 데 7일이 걸렸다. 지금의 느린 우체통은 1년이 필요하다. 우정총국 우편 접수처에서 편지지와 봉투를 무료로 준다. 우표(300원)는 사야 한다. 오전 9시~오후 6시. 신정·설날·추석 휴관. 관람료 없음. 02-734-8369.
5 서울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인 북악팔각정에 있는 느린 우체통.
서울의 야경 명소인 북악팔각정(bukak-palgakjeong.tistory.com)에도 2011년 10월 느린 우체통이 들어섰다. 북악팔각정까지 오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드라이브 코스이다 보니 커플 이용객이 대부분이다. 헤어진 연인이 종종 편지를 돌려달라는 일이 있어, 관리자의 숨은 고충이 크다. 그래서 수취인 주소 변경이라는 독특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단 편지를 부친 지 200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 웃지 못할 일도 많지만 가슴 짠한 사연도 많다.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부치는 편지를 느린 우체통에 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악팔각정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모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이벤트를 계획 중이다. 휴대전화에 담아 둔 사진을 즉석 인화해 엽서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도 인기가 있다. 엽서는 북악팔각정 2층 하늘레스토랑에서 살 수 있다. 엽서·발송비 국내 3000원, 해외 5000원. 02-751-6681.
6 하이원리조트 전망대의 느린 우체통.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high1.com)에는 지금 편지 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눈 덮인 산 꼭대기에서 언 손 녹여가며 손 글씨를 쓰는 스키어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지난 9월 리조트 전망대 두 곳에 설치한 느린 우체통 때문이다. 우체통이 해발 1340m 전망대에 설치된 까닭에 하이원리조트에서는 ‘하이원 1340 우체통’이라고 부른다. 우체통을 설치한 지 석 달 만에 엽서 5000장이 다 나갔다. 엽서는 물론이고 발송까지 공짜다. 작성날짜를 새긴 기념 도장을 엽서에 찍을 수도 있다. 느린 우체통 양 옆에 하이원리조트 마스코트 ‘하이하우’와 눈사람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엽서는 전망대 옆 레스토랑 ‘마운틴탑’에 놓여있다. 최근 하이원리조트 8경과 하이하우 그림을 담은 엽서 16종 18만 장을 제작했다. 1588-7789.
7 바다제비를 형상화한 가거도의 송년 우체통. [사진 신안군청]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는 우리나라 영토의 최서남단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떨어지는 장소다. 이 외진 섬에도 느린 우체통이 있다. 묵은 해 보내는 마음으로 편지를 띄우자는 뜻으로 지난 5월 만들었다. 우체통의 공식이름은 가거도길 사서함 1호 송년우체통이다. 송년우체통은 귀한 몸이다. 우체통 하나 조성하는 데만 7600만원이 들어갔다. 가로 1.49m, 세로 0.88m, 높이 3.12m의 이중 구조 철제물로 제작됐다. 워낙 바람이 센 섬이어서 우체통 옆으로 바람막이용 돌담도 쌓았다. 우체통은 바다제비 9만 쌍이 서식하는 가거도의 특징을 살려 바다제비 모양을 하고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어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신안군청 가거도출장소 고경남(49) 소장이 매일 편지를 수거해 날짜별로 보관하고 있다. 엽서는 가거도 숙박업소·식당 등에서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고 가져갈 수 있다. 우표를 안 붙여도 된다. 사서함 주소를 이용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느린 편지를 부칠 수 있다. 061-240-8620.
8 부산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 앞바다의 야경. [사진 부산 동구청]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행복’ 부분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길 산복도로 중턱에 ‘유치환의 우체통’이라는 이름의 기념관이 있다. 부산에서 숨을 거둔 청마(靑馬) 유치환(1908~67)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지난 5월 완공됐다. 3층 하늘전망대에 청마의 시 ‘행복’에서 영감을 얻은 느린 우체통이 설치돼 있다. 유치환의 우체통은 사진 애호가가 특히 좋아한다. 우체통 앞으로 부산항 앞바다와 북항대교가 보이고 뒤로는 산복도로의 비탈진 달동네가 보인다. 엽서는 발송비를 포함해 270원에 판다. 느린 우체통이 있는 3층 전망대와 1층 야외공연장은 항상 개방돼 있다. 2층 전시실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 051-469-9818.
특이한 곳에서 만나는 느린 우체통
현재 전국에는 느린 우체통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면 운영이 안 되는 곳도 있다. 전국의 느린 우체통 중에서 특이한 장소에 있거나 운영이 잘 되고 있는 10곳을 추렸다. 아래 표에 나오는 우체통 중에서 3곳만 빼고 공짜로 편지나 엽서를 부칠 수 있고, 1곳만 빼고 1년 뒤에 배달된다.
DA 300
사진=신동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