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정신재-권천학시인론-상상의 자유를 통한 본질 찾기

천마리학 2013. 11. 29. 19:21

 

 

 

 

<해설>

 

상상의 자유를 통한 본질 찾기

----권천학론

권천학 시집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를 중심으로

 

정 신 재

(문학평론가)

 

 

1, 산으로 간 까닭은.

내가 무려 300Km를 달려 이 곳 팔공산 갓바위 선본사(禪本寺)에 온 것은 오염된 환경의 폐해로 상실된 인간성의 위기를 실감하고 도망치듯 산으로 달려온 권천학 시인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오래 전에 발표된 권 시인의 시 한 편을 떠올리면서.

 

 

그대 손금이

내 생애 얽는 오랏줄 되어

삼줄 질긴 이름으로

내 발목 묶이고싶네.

 

그대 가슴에 박힌 서러운 가시

내 눈물로 뽑을 수만 있다면

그물 속에서 버둥대는 은빛 물고기 되어

강물은 꺼이 꺼이 울어쌌네.

 

잠 못 이뤄 마른 몸둥이

깊고 긴 꿈에서나마

한 그루 나무로 마주설 수 있다면

내 생애 한 귀퉁이쯤 잘라내어도 좋겠네.

 

그대 터진 상처에

내 살점을 보탤 수만 있다면

어디 한 두 군데 흔적이 아니고

온통 한 덩어리의 완전한 아픔이고싶네.

 

그물전문

 

 

나는 어제 저녁 해발 900m의 갓바위까지 올라오기 위하여 한 시간정도에 걸쳐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하나 보았다.

멀리 대구 시내가 검푸른 하늘과 시커먼 산자락 사이에서 입을 벌린 조개껍질 속에 들어있는 금보석들처럼 반짝거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금보석들은 내가 갓바위 정상 가까이 오르자 점점 더 커지면서 우주선 모양의 은하수가 되어갔다. 그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두고도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갓바위를 오르내리는 것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권 천학 시인이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고 이곳 선본사에 올라와 있는 이유와도 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주지인 원종(圓宗)스님이 마련해 준 선본사 중단의 온돌방에서 새벽이 되기 전에 세 번 잠에서 깨었다.

첫 번째로 깬 것은 순전히 갓바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 때문이었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었다.

그들은 아예 막대기까지 짚어가며 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막대기까지 짚어가며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네 발로 다니던 인간이 두 발로 서게 되고 다시 세 발로 걷는 공상을 해보았다. 지식이든, 기술이든, 체력이든 현대는 뭔가를 의지해야만 살 수 있다. 유사 이래로 과학이 가장 발달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산을 찾거나 신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의 폐해를 피해서 도시를 떠나 이처럼 밤새도록 산을 오르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어제 산을 오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밤새도록 촛불을 켜놓고 약사여래불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들이 비는 소원은 도대체 뭘까?

산을 오르면서 나는 학생들 시험 때가 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아낙네들이 산을 오른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들은 자신이 굴곡의 역사적 환경 때문에 못했던 일을 자식들이 대신해주기를 바라며, 그것이 남을 위한 자비심의 하나라고 생각하고는 차가운 산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수없이 허리를 굽혔다 일어서면서 손을 비벼대고 있었다.

나는 어젯밤 권 천학 시인의 소개로 스님을 뵙자마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뜻을 물었다.

스님은 웃으면서 얼굴을 쓰다듬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거지요.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밥을 먹어본 사람이 생각한 밥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는 스님의 선문답적인 대답을 들으면서 나 역시 세상의 공허함 때문에 탐방을 핑계로 이 곳을 허위허위 달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해에 찌든 도시를 떠나 사람들은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산에서도 그들의 빈 가슴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어쩌면 갓바위에서 약사여래불에게 빌고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암시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자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조적인 세계를 살아온 그들은 바로 우주에 대해 기도를 통해서 몽상함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곳까지 오시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이렇게 묻는 권 시인의 말에 옆에 있던 스님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이렇게나마 큰 부처님 곁에 온 거지요. 허허허·····”

내가 두 번째 잠에서 깬 것은 새벽 예불 소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4시 반. 나중에 권시인은 원래 3시부터 예불이 시작된다고 귀띔해주었다. 스님들 몇 분이 약사여래불을 나지막하게 외우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잠깐 불은 켜놓고 수첩에다 어제 저녁 권 시인과 나누었던 얘기들을 정리했다.

내가 권 시인을 탐방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왜 그녀가 서울을 훌쩍 떠나 이 곳에 와 거하기로 했는가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토록 힘든 돌계단을 허위적거리며 길을 묻고 물어서 선본사 갓바위의 하단에 도착했을 때 놀랍게도 시인은 대중공양을 하는 식당 입구에 놓인 책상 앞에 승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나는 놀라움을 숨기느라 긴장해야만 했었다. 대중공양간은 절에 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들끓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붐볐다. 그 곳에서 권 시인은 보살의 모습으로 중생들의 상담을 받으며 기도 접수를 받고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칠 월 백중 영가제(靈駕祭)를 지내는데 접수받은 이천 장이 넘는 위패도 모두 권 시인이 손수 써서 붙였다고 했다.

사실 나는 두 번째 시집 텃밭에 몰래 심은 나의 사랑은이나 세 번째 시집 가이아 부인은 와병 중의 표지에 나오는 사진처럼 시인이 홀로 선방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시인을 찾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인은 뒷머리를 틀어 올린 채 바른 자세를 한 여지없는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시인은 원종 스님으로부터 보리장(

菩提藏 : 깨달음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 보살이라는 법명까지 받아놓고 있었다.

나는 권 시인과 얘기를 나누면서 권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가이아 부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염된 문명으로 인해 생긴 인간성 상실을 가슴 아파하던 가이아 부인. 시인은 그 가이아 부인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 곳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시인은 공허한 마음을 안고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따뜻이 맞이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평소 종교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전 특별히 갖고있는 종교가 없어요. 제가 이 곳에 온 것도 우연한 기회에 오게 된 것이지, 꼭 불교를 믿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종교와 통하는걸 많이 느끼긴 하지요. 아마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의 작품을 논하시는 분들 중에는 종교와 연관지어서, 주로 불교나 밀교 힌두교까지 연관 짓는 분들이 있는걸 보면 아마도 제 몸 속에 저도 모르는 종교적 원형이 잠재되어 있나봐요. 시라는 작업이 정신적인 작업이고 우리의 정신은 어차피 어떤 형태로든 종교적인 부분에 포함되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고 또 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제 경우는 종교 중에서도 특히 불교 쪽과 자연스럽게 연관 짓는 것을 보면서 아마 다른 종교보다는 불교 쪽이 생리적으로 더 가까운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하여튼 저의 시들이 갖고있는 주제가 끊임없는 생명력이고, 또 저의 사고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고들 하는데 그것도 곧 종교와 통하는 게 아닐까요?”

평소 시를 어떻게 써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시를 어떻게 쓰냐구요? 어떻게, 어떻게······ 막연하군요. 그냥 쓰죠. 써지니까···· 어떻게 대답을 한다? 그래요 맞아요. 진실. 전 시를 진실되고 뜨겁게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저렇게 규격에 맞추고 틀에 맞추고 하는 것은 이미 시가 태어난 후의 기술적인 부분에 속하는 일이지요. 시는 겉멋이 아니고 삶의 원형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시는 곧 내 살점 중의 한 부분이니까요. 저의 시를 보고 뜨겁다고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연하죠. 말하자면 삶의 엑기스가 녹아있는 시, 그런 시를 쓰고 싶고 또 그러려고 노력해요. 이론보다는 삶 자체가 진실 되고 뜨거워야 시도 진실 되고 뜨겁겠지요. 머리나 손으로만 쓰는 시, 전 거부합니다. 차라리 발로 쓰지요. 예를 들자면 삼국유사의 백제부분을 쓸 때는 전 백제 땅을 수 십 번 찾아다녔어요. 아직 끝도 못 내고 있지만. 바다 시를 쓰면서 전 수도 없이 바다에 갑니다. 그 것이 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끄덕거리고 있는 동안에 시인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이론이나 테크닉에만 의존하고 있는 시를 보면 저도 가끔 그러지만 어딘지 깊이가 없고 울림이 없고 그래서 꼭 마른 나무 토막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하이테크, 시작에 있어서도 물론 필요하죠. 그러나 테크닉만 있고 알맹이, 눈물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속 빈 강정 같다고나 할까요? 하여튼 뭔가가 들어있지 않은 시보다는 차라리 기술이 서툴더라도 우리들 가슴을 젖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시가 저는 좋더라구요.”

권 선생님의 시 가이아 부인은 와병 중을 읽어보니 문명의 병폐로 생긴 인간성 상실을 분명히 몸으로 체험케 하면서, 다른 작품 씨앗 속으로 물살 속으로처럼 보다 신선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비약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데·········”

그래요, 대지는 그리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대지의 여신을 말하는 저의 가이아 부인은 재생능력이나 자정능력을 스스로 갖고 있으니까요. 제가 시문학지에 얼마 전에 연재를 끝낸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이나 시대문학에 연재를 마친 바다시 연작시 후속에 해당하는 잃어버린 섬을 찾아서나 현재 연재하고 있는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등 모두가 갖고있는 주제는 초록비타민입니다. 생명력이나 초록 비타민은 같은 맥락이지요. 모두가 자정능력만이 아니라 정화력까지 갖고 있는 겁니다. 제가 추구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시란 어차피 카다르시스 아닌가요? ”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전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순결 콤플렉스에 걸려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화자는 자신의 뇌리를 스치는 오염된 환경의 불길한 이미지에도 참지 못하거든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좀 다른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꼭 시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도·······

그 점에 대해서 두 가지로 답해야 하겠군요. 시적인 것과 시 외적인 것으로. 먼저 시 외적인 것부터 말해야 이해가 쉽겠군요. 말하죠. 저를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로 분류한다면 전 정열적인 사람에 속해요. 그건 저 자신은 물론이지만 이미 저를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저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해야겠죠?(웃음) 어떤 이는 저에게 장미를 비유하기도 하고 동백을 비유하기도 하고 또 황진이의 이미지를 참 많이 느낀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어요. 혹은 무당이라고도 하고 신기가 있다고도 하고···· 어떻게 말해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제 속에 분명히 가 있다고는 생각해요.(? 맞은가? 하여튼) 잘 내색하지 않고 눌러두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진 않지만. 그렇게 드러내지 못 하는 건 오랜 교육과 길들여진 전통적인 의식 때문일 거예요. 하여튼 그렇게 뜨거운 가 있다는 건 곧 순결 컴플렉스와 연결이 되겠죠?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자신이 피해를 보는 수도 있고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 다치지 않으려고 하는 방어본능이 강합니다. 그것이 곧 순결 컴플렉스이겠지요. 얘기가 여기까지 풀렸으면 그 다음 시적인 문제까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나요? 시는 곧 상처받거나 더러워진 영혼을 씻어주는 이른 바 카다르시스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 또는 시가 순결하지 않고는, 깨어있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일이지요. 거듭 말하지만 어차피 시 는 순결한, 순결하고자하는 정신의 결정체니까요. 제가 말하는 순결은 정신적 순결을 말합니다. 육체적 순결을 말하는 건 좀 웃으운 것 같애요

새벽 6시에 권 시인이 나를 데리러 오기로 되어있어서 나는 중단이라고 하는 내 침소에서 세 번째로 잠을 깼다. 여전히 사람들의 발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이 등산객이거나 소원을 빌러오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이 지구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곳 선본사에 와서야 시인이 가이아 부인의 상실된 인간성을 치유하고 우주의 숨결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어제 저녁 해발 900m의 산을 기다시피 올라와 세 번째 잠을 깨어나며 느낀 것이었다. 마침 오늘이 삼칠 기도 입제일(入祭日)이어서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렸다.

나는 시인을 시인이 있고싶은 자리에 있게 하고 싶었다. 나는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가리라 마음먹었다. 어려운 길 오셨으니 좀더 쉬어가라는 권 시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스님과 권 시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끊이지 않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한 편의 권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병이 들고싶어.

 

풀섶

어디메쯤

가을벌레 한 마리 기르면서

더듬이 끝으로 오는

새벽.

찬란한

이슬로 맺혀

꽃의 심장을 무너뜨리는

햇빛에 찔려

아프게 죽으리니.

 

이름만 들어도

향기로운

들꽃이고 싶어.

 

떨려오는 바람결에

말갛게 살다가

시샘 없는 빛깔로 남아

꽃잎이던 기억마저 버리고

밤마다 승천하여

별이 되리니.

 

중년전문.

 

 

 

내가 밤새도록 들었던 발소리를 내며 제각기 지팡이를 짚고 올라갔다. 그들을 보며 나는 이 시대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찾는 도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안에 있음을 알았다.

 

 

2, 알레고리를 통한 개인의 실존 파악하기.

언젠가 권 천학 시인이 절망이 곧 희망이며 죽음이 곧 부활인 시를 쓰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라는 제목을 달고있는 연작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에 한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조 창호 씨를 모티브로 삼은 충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며칠 전 나는 권 시인에게서 조 창호 씨를 소재로 한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의 시집 원고를 받았다.

권 시인이 근래 시작 활동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초록 비타민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미 시문학지에 연재를 마친 연작시 초록 비타민의 서러움, 혹은과 시대문학에서 이미 연재를 마친 연작시 잃어버린 섬을 찾아서는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고, 이번에 연재를 마친 연작시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는 같은 초록 비타민이 주제이면서도 테마는 바다가 아닌 나무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러고도 현재 바다시의 종결 부분에 해당하는 연작시를 또 마무리하고 있다니 그 왕성한 창작 의욕과 함께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시에 대한 열정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권 시인의 주변의 동료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 여잔 밥 먹고 시만 낳는 모양이야하던 그 말, 그리고 이 여잔 소설도 쓸 수 있을 거라는 걸 동물적인 육감으로 느낄 수 있어, 하던 누군가의 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번 원고의 서문에서 시인은 45년만에 북한 탈출에 성공한 조 창호 씨와 시베리아의 벌목장을 탈출해 온 벌목공들의 사건이 모티브가 되어주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두 번의 깨달음을 가져왔다.

하나는 조 창호 씨 개인의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들을 모티브로 쓴 권 천학 씨의 작품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인간은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존재이다. 그 중에서 어떤 이미지가 개인의 의식을 사로잡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외압적인 질서가 있다. 자연의 섭리, 역사적 상황 등은 개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인에게 어떤 것인가를 요구한다. 신이 죽어라 하면 죽어야 되고, 전쟁이 일어나면 두려워하게 된다. 여기에다가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45년만에 북한을 탈출해온 조 창호 씨의 경우 역시 개인의 숙명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뒤바뀐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포로가 되고 그야말로 억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끝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고야 말았다.

그는 의사였던 조부의 맏손자로써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으로 인한 45년 동안 그가 원하지도 않았던 땅에서 포로와 탄광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춥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선을 넘었을 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앙금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북에 두고 온 자식들 때문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 곳에선 가족이 중국에 갔다가 몇 개월이 되어도 안 오게 되었을 때 실종신고를 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래서 사선을 넘다가 자식들을 죽게 하느니 안전한 길을 택하려고 했던 것이 이처럼 생이별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조 창호 씨 일화는 역사적 상황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숙명에 깊이 작용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비단 조 창호 씨 개인의 숙명이라기보다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안고있는 우리 민족 전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조 창호 씨 이야기는 바로 의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권 천학 시인이 역사적 상황의 굴레로 씌워진 인간의 모습을 조 창호 알레고리로 표현해 놓은 것은 우리를 옥죄어오는 역사적 현실로부터의 비상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제 1<휘몰이>에서의 조 창호 알레고리란 한 개인을 옥죄고 있는 신의 질서이거나 실존적 상황을 의미한다.

 

 

날마다 교수형에 처해지는

수인 번호 212966

내 주검의 번호 211368

 

나는 거부한다.

내게 씌워진 죄목과 주검의 올가미를,

살아생전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둠을 보았을 뿐.

 

어둠 속에 내팽개쳐져서

떨고있는 내 운명을 보았을 뿐

나는 무죄다.

 

 

휘몰이· 1부분.

 

 

 

시인은 여기서 ‘212966’45년만에 북한을 탈출해온 조 창호 소위의 군번이고, ‘211366’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치된 조 창호 씨의 위패 번호라고 부기해 놓았다.

이것은 한 개인의 진실과는 상반되게 합리화된 역사적 현실에 대한 강한 의혹을 형상화해놓은 것이다. 화자는 역사적 현실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화자의 안에 진실을 보면서 그것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뿐이다. 이것은 설득과 논리에 의해 되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진실 그대로를 말하는 독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개인의 침묵과 명상이 왜곡된 현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세우는데 있어서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휘몰이· 5에서는 조 창호 일화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관측장교이면서

내 인생에 쌓인 어둠은 관측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 실수가 아니었다.

연출자의 장난이었다.

갑자기 조명을 끄고

효과음을 죽이면서

무대는 암전

거기서부터 나의 직무유기는 시작되었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더듬이는

두터운 어둠의 층을 뚫지 못하고

덧없이 흘러갈 수밖에,

있으나마나한 단역으로

전쟁놀이 11막에서

무대 뒤 어둠 속

그 허망한 망각 속으로 밀려나버렸다.

 

 

-휘몰이·5부분.

 

 

 

시인은 개인과 권력의 대비를 조 창호 알레고리로 표현하여 한 개인을 옭아매는 권력의 횡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연출자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권력에 해당한다. ‘연출자는 화자를 엉뚱하게도 어둠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화자는 권력의 연출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권력의 연출은 한 개인을 그토록 무력하게 만들면서도 그리 진실 되고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한 개인을 어떤 땐 어둠으로, 어떤 땐 망각 속으로 내모는 것이 권력의 비정함이다. 시인의 개인과 권력의 대비는 권력의 몰인정함을 통해서 개인의 권리가 얼마나 짓밟혀질 수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한 인간으로써의 권리 찾기라 할 만하다. 이러한 권력의 몰인정함에 대하여 시인은 희망의 출구를 마련해 놓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동쪽의 그 숲엔 희망이 살고있다고 했다.

푸른 옷을 입은 시간들이

나무들의 관절을 야물게 키우고

보석세공을 하듯

잘 다듬어진 침엽수림에 내려와

햇볕 잔치를 벌이는

해의 살들이

나뭇잎들을 뾰족뾰족 빛나게 하고

가끔씩 훈훈한 안부를 전해주는 바람도 불어와

안개를 걷어내기도 한다고 했다.

들리는 바에 의할 뿐

어느 것 한 가지도 확실한 건 없지만

그 곳에 가면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난 길이 있을 것 같았다.

 

 

휘몰이·6전문.

 

 

 

표현이 비유적이기보다는 직설적인 이 작품에서는 희망을 향한 의지가 뻗어나감이 인상적이다. 시집 전반에 걸쳐 어두움과 답답함이 펼쳐지면서도 가끔 상상력을 가지고 자연의 근원이나 섭리를 몽상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데 휘몰이·6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시인이 휘몰이·1에서 휘몰이·5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권력의 어두움에 의해 탄압 당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그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실존을 부각시키기 위한 아이러니적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시집 제 1부는 어두움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고 화자는 간간이 그 어둠의 세력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시집 제2부 역시 어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의 모습을 나무의 알레고리로 표현해놓았다.

 

 

얼마 전 벌목 당해 나간 이웃의 나무가

친구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찍어내고 있는

독오른 도끼의 든든한 자루가 되어 돌아오다니

나도 언젠가

친구의 목을 자를 칼날의 자루가 되거나

믿는 사람의 뒤통수를 칠 쇠망치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니,

!

나무 속에 흐르는 동물성의 피여!

저주여!

나무이기를 포기하고 싶다.

 

 

-벌목일지 2-5부분.

 

 

 

시인이 나무의 연약함을 말한 것은 인간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 용도가 쓰여짐을 빗대어 표현하기 위해서다. 조 창 씨의 경우처럼 그것이 먹이사슬의 이 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시인은 피식자를 통해서 포식자의 인권 유린을 비판한다. 나무가 도끼 자루가 되거나 칼날의 자루가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권력을 가진 자의 깨우침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권력을 가진 자의 변용을 꾀한다.

 

 

안깐힘으로 버티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목숨에 잔뿌리 내리고

메마른 숨길 타고 오르는

줄기줄기 아픈 관절에

희망의 등을 다는

조국은

밑둥 어디쯤에서

숨이나 쉬고 있는지,

절망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조국은 땅 속 어디쯤에서

물길이나 트고 있는지.

 

 

-벌목일지 2-14부분.

 

 

 

여기서 조국은 바로 올바르게 나아가야 할 권력을 의미하며, 권력도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권력을 희망의 등이 될 수도 절망의 불이 될 수도 있음은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자가 권력의 횡포에 무력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서슬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화자를 통해 이런 역할을 맡기는 것은 나름대로의 복안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둠의 씨 속으로

밤이 지나가고

어둠의 씨눈 속으로

햇빛 뚫고 지나가고

씨 속의 눈 틔우는

바람이 지나가더니

껍질 벗고 여무는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해탈의 나무부분.

 

 

 

화자는 여기서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사과 씨 속이란 근원적인 인간성을 말함이요, 프로이트의 용어로 말하면 모태회귀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화자는 이것을 어둠의 분위기와 맞물려 진행시킨다.

여기서의 어둠이란 인간의 무의식에 깔려있는 그림자 현상(The shadow) ‘’(자아)의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과도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알아야 올바른 자기(自己,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전부, 그 사람의 본성)에 이를 수 있다.

화자가 사과 씨를 어둠과 맞물려 진행시킨 것은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 현상을 파악하여 올바를 자기를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시인이 개인과 권력을 대비시켜 권력의 어두운 속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올바른 권력으로의 유도를 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시인이 권력의 전달 과정을 부각시키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온갖 새들을 불러모아 떠들썩하게 소리잔치를 벌이기를

좋아하던 한 떼의 나무들.

판소리, 남도창, 오페라·········가리잖고 끼리끼리 모여 즐

겁게 살더니 죽어서도 소리판에 뛰어들었다.

아름다운 소리 속에서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휘휘 감 두

르고 윙윙 온몸으로 끼를 풀어내던 생전의 습관대로 죽

어서도 소리통이 되어서 소리판마다 끼어 들어 그 끼를

마저 풀고있다는 소식이었다.

 

 

-해탈의 나무3-10부분.

 

 

 

여기서는 원래의 나무와 죽어서 악기의 일부가 된 나무가 대비되어 나타난다.

시인은 이 두 나무의 대비를 통해 제작자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자기의 본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악기를 만드는 제작자는 바로 권력자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 권력자의 힘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권력자의 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무(개인)’의 본성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힘임을 강조한다.

시인은 1부에서는 조 창호 알레고리를 통해, 2부에서는 나무알레고리를 통해 권력의 어두운 속성 앞에 무력해지는 개인의 실존을 부각 시켰다. 그러나 3부에서는 그 권력의 속성을 알았을 때의 개인의 무서운 힘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에게 해탈이란 자신의 그림자를 안고 현실을 이끌어가는 권력의 어두운 속성을 앎으로써 이루어진다. 아무리 권력자가 그 힘을 과시하여 개인의 숙명을 좌우한다 해도 개인의 본성은 변화시킬 수 없음은 나무의 변하지 않는 끼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나무가 악기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개인의 변하지 않는 본성과 진실을 통해 권력의 어두운 면이 올바른 데로 조율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시 한 편을 인용함으로써 이 글을 마감할까 한다.

 

 

허름하지만 믿음직한 모습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분명히 존재하는

집 한 채 짓고싶다.

바닷바람 촘촘히 스민 해송을 베어

결 살려 속살 희게 깎고

짭짤한 세상살이에

적당히 소금끼 배인 모습으로

확실하게 받쳐주는 정신의 무게를

묵직하게 얹은 대들보

알맞게 굽고 둥글어서

줄기줄기 엮어내는

서까래며 추녀며

하늘이 내려와 물결 지는 집

굵은 뼈대 일으키는 기둥 곧게 세우고

배흘림 기둥이라면 더욱 좋을

넉넉한 집 한 채

자라나는 어린 것들

등 따숩게 다둑여 줄

송진내 감도는

나무의 집.

 

 

-해탈의 나무 3-7전문.

 

 

 

19971015일 초판발행

1998630일 재판 1쇄 인쇄

199877일 재판 1쇄 발행

6,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