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나무테마연작시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천마리학 2013. 2. 16. 09:59

 

 

 

나무테마연작시 연재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시인의 말 

아직도 나는 사랑에 빠져있다

 

權 千 鶴

 

 

 

 

 

 

 

나는 오래 전부터 나무에 빠져있다. 그리고 늘 식물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나무와 특별하게 남다른 인연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평범한 나무에 대한 내 어릴 적 기억들 몇 가지를 소중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릴 적,

과일나무가 많은 마을에서 살았던 시절의 어느 이른 새벽,

나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과수원 밭고랑의 안개 속에 서 있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가 있다.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처럼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 때 문득 나는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사르륵 사르륵, 소락 소락......

여기 저기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눈감고 귀를 기울여야만, 그리고 숨을 죽여야만 들리는 그 소리.

그것은 나무들의 몸 속을 오르내리는 물소리였다. 아니 나무들이 잠을 깨는 소리였다. 정말 신비로웠다. 일찍 잠을 깬 나무들은 물을 마시면서 소근소근 소근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침묵의 나무들 사이에 눈감고 숨을 죽인 한 덩이 커다란 침묵으로 서 있곤 했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사륵사륵 소락소락 나무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그 소리가 좋아서, 나무의 몸뚱이에 귀 기울이고 나무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 일이 너무 좋아서, 금쪽 같은 잠을 덜어내곤 했다. 그렇게 이른 새벽이면 신들린 아이가 되어 그림자처럼 숨어들어 과일나무 사이를 누비곤 했던 한 시절이 내게는 있다.

 

1960년대 후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아버지께서 정미소와 제재소를 같이 운영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던 시절이어서 나무는 우리에게 얼마간의 부와 권세를 가져다주었고 마을 사람들에겐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이 되어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끔씩, 거의 정기적으로 여러 날 동안 집을 비우셨다. 강원도 어디어디 산판으로 벌목장으로 다니시면서 나무를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께서 여러 날 동안의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우리 집 방앗간 빈지 문턱에 불이 난다. 곧 들이닥칠 일거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마을사람들이 이 궁리 저 궁리 계획들을 갖고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이다.

나무가 도착한다는 소문은 희망을 전하는 전령이 되어 떠돌고, 이어서 마을의 이 구석 저 구석 웅성웅성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들의 생계벌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버지가 구입하신 산판의 나무들이 여러 개의 기차 화물칸에 실려 도착한다. 그때부터 호남선 부용역은 붐비기 시작한다. 나무를 실어온 화물차가 한편에 장기정차하고 한산했던 옴팡집 순덕이네 개장집과 주막집 쌍과부네가 웅성거리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 동안 허기진 잠에 빠져 느른하던 마을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고, 사람들은 낡은 소매부리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흡사 빈혈을 앓는 사람이 수혈을 받아서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몇 개의 화물칸에 산더미처럼 실려온 나무들의 하차작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길 맞은편 목장(木場, 나무들을 널어 말리거나 껍질을 벗기는 작업장으로 쓰여지는 넓은 마당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까지 실어오는 일, 실어와서는 나란히 나란히 기대어놓거나, 옆으로 눕혀서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어떤 것들은 고대 원시인들이나 인디언들의 집처럼 원추형으로 세워놓기도 하였는데, 모두가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마을의 장정들이 다 동원되는 동안 한켠에서는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 시작된다. 마을 아낙네들이나 하릴없는 남자들, 노인들 할 것 없이 대소쿠리나 삼태기 같은 그릇들과 낫 한 자루씩 들고 모여든 마을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품삯을 받고 생나무의 껍질을 벗기는데, 때로는 자기가 벗긴 껍질이 자신의 품삯이 되기도 한다. 그 껍질은 땔감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곤 한다.

그렇게 껍질을 벗은 나무들은 또 다시 인디언들의 집 모양으로 세워져서 햇볕과 바람으로 몸 안의 수분을 다 날려보내야 한다.

 

나는 그 일터에서 악동(惡童)으로 악명이 높았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다니면서 걸리적거리기도 했고, 반질반질한 나무의 속살을 일삼아 만지느라 일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생들과 또는 이웃의 아이들을 불러내어 나무들 사이사이를 들락거리며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그 비좁은 틈바구니를 오가며 술레잡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의 꾸지람이 늘 뒤따랐다.

그렇게 여러 날 동안 서서 잘 마른 나무들은 톱 칸으로 옮겨지고, 그 때부터는 우리 집 제재소의 전기톱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비명을 질러대며 쉴새없이 돌아가는 전기톱에서 튀는 불똥, 수북하게 쌓이는 톱밥, 온 동네로 퍼져나가는 톱 소리······짜릿하다.

나는 거기에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 일꾼들 사이에서는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는 나는 코를 벌룽거리면서 수시로 어른들 틈에 끼어 목장으로 톱 칸으로 요령껏 드나들었다. 야단을 맞아가면서.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한사코 작업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었는데, 그것은 위험하기도 해서였지만 그보다는 계집아이가 어디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을 기웃거리느냐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냥 고분고분할 내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면서까지, 또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면서까지 아버지의 목장이나 제재소 근방을 맴돌았던 것은 낫 날에 혹은 톱날에 잘려나가는 나무의 살 냄새가 좋아서였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면서 하얗게 드러나는 속살과 그 속살에서 나는 상큼한 나무의 냄새. 참 좋았다. 그러나 늘 코를 벌룽거리게 하던 시절 역시 지나가 버렸다. 나무 냄새도 사라졌다. 나는 자랐고 아버지의 사업도 바뀌었다.

 

또 있다.

이리시(지금의 익산시)에 살 때였다.

나는 많이 자라서 이미 아이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60년 대, 전주에서 문예가족동인 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동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 가려면 이리 역을 이용하기도 하고, 동이리 역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동이리 역 쪽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동이리 역 부근에 커다란 목재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낯익은 냄새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상큼한 나무의 냄새. 주위를 살펴보았다. 높다랗게 쌓아올린 시멘트 블럭 담장 너머로 마른 나무의 냄새가 날아오고 있었다. 담장 안에 삐죽삐죽 세워놓은 나무들의 머리 꼭대기가 보였고, 어린 시절 우리 집 목장에 있던 인디안 집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 후로는 전주에 갈 때면 으례히 동이리 역을 이용하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바쁘고 평범한 일상들 사이사이, 나는 동이리 역 부근의 목재소 길을 서성이곤 했다.

 

나이 들어 시작한 서울살이, 어딘지 삭막한 생활에 길들어지면서 물기 없이 살던 어느 날 혜화동 어디던가 세종로 어디던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내 속의 기억을 깨우는 싱그러운 냄새가 내 발목을 붙들었다.

꽃향기 말고, 꽃향기보다 더 상큼한 냄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둘러보았다.

꽃가게 앞이었다.

화공(花工)의 가위질에 잘려나가는 잔가지에서 나는 나무의 냄새였다.

아득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린 내 유년의 냄새였다.

 

문득, 지나가 버린 시절의 과수원, 목장, 제재소, 동이리 역 근처의 목제소가 떠올랐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뒤로 나는 틈이 나면 가끔, 그리고 일상이 무료해지거나 사는 일이 팍팍하다고 생각될 때면 나무의 살 냄새를 많이 맡을 수 있는 고속터미널 지하 꽃 상가를 서성거리는 습관이 새로 생기기도 했었다.

 

그건 그렇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잊고 있던 냄새를 맡게 된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도록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기억을 재생해내듯, 잃어버린 과거를 되짚어 내었다.

새벽 과수원의 신들린 아이, 목장(木場)의 말썽꾸러기 아이, 톱 칸에서 걸리적거리던 아이, 목재소 길을 서성이던 여자........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한참 만에야 돌아섰다.

아마 나는 그 때 분명히 잃어버린 내 안의 그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섰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나무망치 하나가 내 머리를 내려쳤고, 그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한 생각.

 

! 나무의 피!

내가 꽃향기보다 더 좋아하는 그 냄새가 바로 나무의 피 냄새가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나무의 향기는 속살을 드러내면서 뿜어내는 나무의 피 냄새였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상기되었고, 그것이 발원지가 되어, 내 사유(思惟)의 강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어찌 그리 향기로울 수가 있을까?

비릿한 냄새가 나는 사람의 피, 나무처럼 싱그러운 냄새를 가질 순 없을까?

나는 그렇게 나무에 빠져들면서 사유의 물길은 흘러갔다.

사람의 피에서 나는 비릿함은 죄의 냄새일거야. 욕망의 냄새일거야. 썩어빠진 양심, 더러운 때, 증오, 불신, 사기, 미움·······들이 뿜어내는 독()의 냄새일거야. 찌꺼기의 냄새일거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런 몇 가지 개인적인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갖고있으면서 끊임없이 나무를 생각했고 식물성의 삶에 대해서 깊게 빠져들면서 근래 나의 시도 초록 비타민을 주제로 삼게 되었다.

 

나무연작시를 써 가는 동안 나무들은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들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동물성이라든가, 생존을 위해서 벌이는 처절한 생존경쟁이라든가, 사람들이 모르는 영혼을 지녀야 하는 아픔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지금도 나무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사긴다. 나 또한 계속해서 나무들에게 기울인 귀를 떼지 않고 있다.

 

나무 연작시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를 쓰게 된 동기는 45년만에 이북에서 탈출해 온 조창호 씨와 동토 시베리아로부터 탈출해 온 벌목공들이다. 그 동안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빚진 사람처럼 품고 다니던 구상을 조씨를 비롯하여 벌목장을 탈출해 온 동포들에 대한 일련의 소식들이 보도되면서 벌목장, 나무, 탈출·····이란 단어가 내 안에 묻어두었던 나무에 대한 향수와 감성을 툭툭 치고 나와 나를 초록 물이 들게 했다.

 

그 무렵 나는 바다 연작시 1부에 해당하는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을 시문학에 19938월 호부터 19945월 호까지 연재를 마친 후에 이어서 바다연작시 2부인 잃어버린 섬을 찾아서1994시대문학가을호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내 속에 오래 품고있던 감성의 보따리를 건드려서 터트려 주었다. 덕분에 어차피 쓸 것이긴 했었지만 뜻하지 않게 서둘러진 셈이다.

 

19941122일부터 30일까지의 사이에 35편의 작품을 그야말로 정신없이 쏟아내었다. 하루에 대여섯 편씩 썼다. 온종일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잠결에도 머리맡에 둔 원고지를 끌어당겨 썼다. 놀라운 체험이었다. 쓰고 나니 한소큼 땀을 흘려 취한을 하고나서 지독한 몸살을 벗어버린 기분이다. 나머지는 그 후에 쉬엄쉬엄 쓴 것들이다.

 

지금은 잃어버린 섬을 찾아서의 연재도 무사히 마치고, 바다 연작시 3부를 마무리하고 있는 중인데, 우연히 기회가 주어져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를 묶게 되었다.

막상 나무만 시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내려고 하니 여러 가지로 미진함이 남는다.

아직도 나의 나무에 대한 집착이 끝나지 않고 있음이다.

아직도 나는 나무에 빠져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더 깊고 더 푸른 나무와의 사랑을 나는 희망하고 있다.

 

오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환경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호막이듯이,

비타민이 비만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좋은 영양분이듯이,

나는 오존이나 비타민을 통틀어 초록비타민이라 이름하였고, 나의 시가 우리의 삶을 일깨워주는 정신의 초록 비타민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시 쓰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1997

나무가 잠자리에 드는 늦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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