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37-약밥도 야끼! 해리포터에 빠져있는 아리!

천마리학 2012. 5. 16. 02:32

 

 

 

*2011년 8월 17일(수)-약밥도 야끼! 해리포터에 빠져있는 아리!

837.

 

 

아침엔 엄마가 약밥을 만들었는데 아리는 역시 야끼!(맛 없어!)를 외치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프렌치 토스트를 고집한다.

엄마가 또 속상해한다. 어쩔 수 없이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주었는데, 그나마 3쪽이나 먹어서 그것으로 만족했다.

아리는 늘 먹는 토스트나 베이글 등 탄수화물 류를 즐기고 평소에 늘 먹던 음식만을 고집한다. 이것도 편식인지··· 고쳤으면 좋겠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오늘은 산책 겸해서 시청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시청광장에서 수요일 농산물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시청도서관에 책도 반납하기 위해서였다.

엄마와 도리, 모두 나섰다.

브램너 블러버드에 있는 TD은행에 들려서 할머니의 통장에 수표를 입금시키고, 스파다이나 앤 웰링턴스트리트에 있는 우체국에 들려 할머니의 시집을 미국의 정봉길선생님께 부치고, 그리고 퀸스트리트로 들어섰는데 ‘아리, 힘들어 할머니’한다.

얼마 전, 그랑쥐 파크에 가는 길에도 쉬었던 거리의 손가락 모양의 핑크, 노랑, 그린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다시 걷는데 여전히 힘 든다고 했고, 따가운 햇볕 탓인지 엄마와 할머니도 힘들었다. 그래서 챕터스에 가기로 했다. 챕터스는 아리가 2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드나들기 시작한, 생애 첫 서점이며, 아리의 페이브릿 장소이기도 하다.

 

 

 

 

 

챕터스 앞에 가자 아리가 ‘이곳에 오랜만에 온다’고 하면서 신이 나서 먼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가서도 서가 사이를 다람쥐처럼 뛰어다녔다. 3층으로 올라가 어린이용 서가 앞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아리는 손 안에 쥘 정도 크기의 동그란 볼을 어디서 골라와선 매직이라고 했다. 볼을 움직이면 그 안에서 오색의 방울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매직?

해리포터에서 해피포터가 이렇게 생긴 볼을 가지고 매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요즘 아리는 해피포터에 푹 빠져있다. 긴 볼펜을 스틱 삼아 손에 들고 엑스프레스 플레터늄! 하며 외치는가 하면, 몬스터 이야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프론트 스트리트의 M&M에 들려 빵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도리가 샘플로 준, 1TS 정도의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맛있게 받아먹는지, 할머니가 조금 더디게 먹이면 빨리 달라고 스트롤러에서 발버둥쳤다. 또 할머니에게 스트롤러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옹알옹알, 발버둥.

 

 

 

 

 

 

도리는 정말로 할머니가 안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또 할머니가 음식을 먹여주는 것도 몹시 좋아한다. 할머니가 가까이 가면 벌서 안아달라고 팔을 너울거리며 옹알옹알, 엄마나 아빠의 품에서 옮겨오곤 한다.

아리가 거리에서 얼마나 몸놀림이 빠른지 보고 있으면 신통하고 대견하다. 언제나 즐겁고 신 나는 아리. 더구나 요즘은 부쩍 는 한국어 실력으로 단어를 구사할 때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라바(LABA) 앞을 지날 때 엄마가 오랜만에 라바에서 쇼핑을 해보자면서 들어간 엄마가 마지막 음식재료 쇼핑을 하는 동안 할머니에게 오고 싶어하는 도리를 스트롤러에서 빼내어 안아주고 있었다. 스트롤러를 벗어난 도리는 신기한 듯 두리번두리번 주변의 물건들을 보면서 방실방실, 쇼핑하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한 마디씩 한다. 쇼핑이 끝나자 아리가 먼저 스트롤러에 올라탔다.

“아리, 힘들어.”

할 수 없이 엄마가 도리를 안고 앞서 걷고, 할머니가 아리를 태운 스트롤러를 밀었다. 쇼핑한 물건들을 실어서 스트롤러가 묵직한데다 로저스센타 쪽으로 뻗은 블루제이 스트리트의 약간 경사진 길을 밀어올려야 했다.

“할머니, 힘들어.”

로저스 센타 앞의 브릿지를 지나는데 아리가 스스로 스트롤러에서 내렸다.

“할머니 힘들어서, 아리, 내려, 내릴 거야.”

할머니가 힘드니까 내려서 걷는 아리!

오, 기특한지고.

 

 

 

 

 

 

저녁에 한의사 닥터 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미리 할머니의 보약을 짓기로 이야기를 해놓은 것이다.

닥터 팽은 매년 우리 가족들이 단골로 약을 지어먹기 때문에 우리가족의 체질이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전화로 증상이 어떤지, 건강상태가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 문진을 했다.

할머니는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잘 먹는다. 다만 아리 도리와 함께 하는 동안 힘들어서 지치는 것과 요즘 불면증치료 프로그램에 응하느라고 힘 들고, 수면부족으로 가끔 두통에 시달리는 것 외엔 아픈 곳이 없다. 무엇이든 잘 먹고 소화도 잘 된다.

요즘 먹고 있는 약으로는 콜레스테롤 약과 종합비타민, 칼슘제, 오메가 3-6-9 등 평상시에 준비되어있는 영양보충제이다. 두 달 전부터 페리미닥터가 처방해준 FOSAVANCE 라는 뼈약과 지난 달에 한국에서 할머니 친구 ‘바람’이 환약으로 지어 보내준 무릎관절약도 먹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30알 내외를 먹는데 처음 며칠 먹고 난 후 속이 쓰렸다. 그래서 삼사일 쉬어보았더니 괜찮아져서 그 다음부터는 20알 내외로 먹는다. 보내준 환약이 한 보따리인데, ‘바람’은 할머니의 불면증 치료도 한방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어 보내겠다는 걸, 지금 진행하고 있는 불면증치료프로그램을 받고 있으니 나중에 필요할 때 말하겠다고 이유를 대면서 극구 말리고 있는 중이다. ‘바람’이 고마울 뿐이다.

 

 

 

 

 

 

 

닥터팽은 정신이 맑아지고, 기력이 좋아지는 약을 지어주겠다고 하면서 이번 일요일 그러니까 21일 오전 11시에 약을 찾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할머니가 온통 약으로 사는 기분이다. 젊었을 땐 병원신세 지거나 약국신세를 거의 지지 않고 살았는데··· 이것이 늙었다는 증거로구나 생각하니 서글퍼지기도 한다. 선배시인 홍윤숙씨는 시 <장식론>에서 여자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주렁주렁 악세사리를 많이 착용한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먹는 약이 많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토이저러스에 들려 돌아본 후 집에 와서 엄마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배달되어왔다. 의외로 빨랐다. 도리의 식탁췌어와 목욕그릇.

식탁췌어가 어딘지 반품된 물건처럼 여기저기 때가 묻고 긁힌 자국들이 있어 엄마가 이번 일요일에 가서 반품해야겠다고 했다. 바꿔주지 않으면 현금을 반납 받는다고 한다. 물건을 산 후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자가 있을 경우 두말없이 영수증만 있으면 바꿔주거나 환원해주는 것, 그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이 지금은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이곳 수준을 따라오려면 어림없다. 심지어 화장품의 경우, 쓰다가 알러지가 생겼다거나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면 두말없이 반품 또는 교환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