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36-할머니와 결혼할거예요! 의지 강한 아리의 기발한 생각

천마리학 2012. 5. 15. 01:16

 

 

 

*2011년 8월 16일(화)-할머니와 결혼할거예요! 의지 강한 아리의 기발한 생각

 836.

 

 

 

오후에 잠깐 급한 메일이 있어서, 아리가 엄마아빠 방에서 놀고 있는 틈을 타서 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리가 뛰어왔다.

“할머니, 할머니, I need a ring.”

할머니의 컴작업을 방해하면서 책상 서랍을 열려고 한다.

“링? 반지? 왜?”

“Yes, ring. 반지. ··· I need.”

“그게 왜 필요해?”

“ I want married.”

“뭐라구? 결혼하고 싶다고?”

“Yes, I want marry with 할머니. So I need a ring.”

“할머니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끄덕끄덕하면서 계속 서랍을 뒤진다.

“누가 그랬어?”

“아빠가. 아빠 손 갈 낙, ring. 아빠 had a ring. and you, too.”

아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결혼반지라고 이야기 해준 모양이다. 그랬더니 아리 저도 할머니와 결혼하고 싶으니까 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얼마나 성화를 대는지. 할 수 없이 할머니도 서랍을 뒤졌지만 대용할 게 없어서 스테인리스 고리 한 개를 겨우 찾아서 아리의 손가락에 걸어주었다. 커서 손가락을 세워들어야 했다.

“우선 이것으로 해. 나중에 우리 가게에 가서 반지 사자. 알았지?”

“알 아 써. 나중에 반지 사자, 할머니 and me.”

아리가 손가락에 스테인리스 고리를 걸고 자랑하기 위해서 아빠방으로 뛰어갔다.

 

 

 

 

 

 

 

 

 

아리는 주장도 강하고, 의지가 강하다.

할머니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쩌다 설명을 하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 노우, 아이 노우’하면서 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제가 아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 I know already!’하며 이야기를 끊기도 한다.

이즈막엔 아리가 그려오는 그림에 To 와 From 을 쓰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날짜 쓰는 방법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16, 8, 2011’ 이렇게. 월 표시는 아라비아숫자와 영어표기 두 가지로.

요즘 종이를 접어 편지라고 하면서 자주 엄마와 할머니에게 주기도 하고 그림은 늘상 그려온다.

오늘도 아래층에서 그림을 그려가지고 할머니에게 올라왔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보여드려야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To · Chunhak 과 From ` Ari 라고 써야 누가 보내왔는지 알 수 있고,

그런데 오늘도 스페이스 쉽과 하우스 ···를 그린 그림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보냈을까?”

“아리!”

“그럼 표시를 해야지. 깜빡 했구나. 어떻게 하지?”

 

 

 

 

 

 

 

 

잠시 아리가 머뭇거리기에 할머니가 직접 종이에 From 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 I know, I know,” 하더니 할머니가 쓴 From 위에 X 표시를 강하게 좍 그어버리고는 옆에 다시 쓴다. TO ` CHUNHAK 과 FROM ` ARI 를 썼다.

녀석! 고집은! ^*^

이렇게 고집센 녀석과 결혼해서 어떻게 산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할머니는 불면증치료 프로그램으로 여전히 힘든 상태. k가 떠난 후로 미뤘던 일들이 전혀 잡히지 않고 부대낀다.

작품원고 정리도 해야 하고, 메일정리도 해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일 뿐,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자유시간도 없고, 활기찬 시간도 없는 나날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컴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또 아리가 7시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세요.”(아직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오, 아리. 일어났구나. 아리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곧 피피를 한다고 나가 화장실을 다녀서 내려가더니 아래층에서 딸각딸각··· 작은 버큠 돌리는 소리도 들리고 그릇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더니··· 그 사이 아빠가 출근하는 소리도 들리고, 할머니, 할머니 부르면서 통통통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

 

 

 

 

 

“할머니, 아리, 아빠 회사 바이바이 해 써. Don't crying and 문 lock 해써.”

아빠가 출근하는데 바이바이하고 현관문도 아리가 잠그고 왔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아리는 요즘은 괜찮아졌지만 한 동안 아침에 아빠가 출근할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서 울며 보채었었다. 세 살 때의 일이다.

오, 정말 그랬어? 어쩐지 조용하더라, 우리 착한 아리!

아리의 엉덩이를 다둑여 주었더니, 계속 요구한다.

“And, close your eyes! I will show you something!”

할머니의 팔을 잡아당기며 재촉한다.

‘close your eyes!’는 아리가 엄마나 할머니를 놀라게 해준다면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레고로 색다른 것을 만들었다든지, 새로 그린 그림을 보여줄 때, 뭔가를 평소와 다르게 했을 때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장난감 위치를 바꾸거나 숨겨놓고, 또는 종이접기를 해서 ··· 등등. 그것들을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다.

‘소프라이즈!’란 말과 함께 사용한다.

어른들에게는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아리에겐 대단한 일이다.

 

 

 

 

 

아리의 재촉으로 컴 작업을 마칠 수밖에. 아리가 직접 마우스를 놀려 화면들을 × 를 클릭하여 끄게 했다. 이것도 늘 아리가 원하는 짓이다.

눈을 감은 채 아리에게 손을 잡혀서 계단을 내려갔다. 어제에 이어서 식탁준비를 해놓았다. 씨리얼 접시가 엄마, 할머니, 아리의 자리에 각각 놓여있고, 우유통, 스푼과 씨리얼 상자가 식탁 위에 놓여있다. 어제에 이어 두 번 째, 아리 스스로 한 식탁준비다.

“오우, 아리. SK 가 되니까 정말 다르구나. 잘 했어!”

아리가 한껏 만족해하면서 으쓱!

11시 반, 아리가 수영장에 가자고 조른다.

어제 수영장에 갔었기 때문에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다음에 가자고 달래었지만 듣지 않는 아리. 에휴, 할머니가 아리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니!

점심시간을 따지면 늦은 시간이지만 할 수 없이 풀장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서너 사람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풀장은 아리와 할머니 독차지.

1시에 돌아오니 배가 고픈 아리. 마침 엄마가 비빔밥을 또 준비해서 신이 났다. 어제 저녁에 비빔밥을 먹으면서 할머니가 하루에 한 번 씩을 이렇게 한국식으로 채소위주의 비빔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신경을 쓴 모양이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중에 아리가 얼핏 건이 얘기를 했다.

“k가 보고 싶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k가 너를 때리고 안 놀아주고 그랬는데도?”

“k, 안 나빠.”

할머니도 엄마도 의아해서 ‘왜?’ 하고 되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아리의 입에서 나왔다.

“ I doing something, 아리, something do, 그래서···”

자기가 뭔가 k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k가 화를 냈다는 것이다.

“뭘 했는데?”“라이크 디스, 라이크 디스.”

팔을 건드리는 흉내와 몸을 스치는 흉내를 냈다. 말하자면 자기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k가 화를 내었다는 것이다. 놀라워라.

함께 지낼 때 k의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하니까 손대지 말라고 이르고 또 이르고 했던 것인데···

같이 있을 땐 그렇게도 억울해하더니··· 아직 4세짜리 아이치곤 생각이 얼마나 성숙한가? 나의 손자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 아리!

 

 

 

 

 

 

 

저녁식사 전에 엄마가 <Panda Koopu>를 보여주었는데 연신 할머니를 함께 보자고 불러댄다. 할머닌 모처럼 컴 앞에 앉아 밀린 메일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이리 오세요’ 하고 외쳐댈 때마다 잠간만! 하고 미뤘더니 계속 불러댄다. “할머니, I say, 할머니 내려오세요!” 하고. 할 수 없이 내려가서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할머니, 판다 strong than tiger!’하면서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 한다. 이미 여러 번 보는 거라서 스토리를 꿰고 있다.

도리는 제법 밥을 잘 먹는다. 식빵도 잘 먹고 달걀도 잘 먹는다. 현미밥 알갱이도 잘 받아먹긴 하지만 소화가 안 될 것 같아서 할머니가 씹어서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씹어서 먹였더니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납죽납죽 잘 받아먹다가 좀 늦은 듯 하면 옹알옹알 빨리 달라는 시늉을 한다.

도리는 의사표시가 강하다.

음식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고개를 단호하게 가로 젖는다. 하이췌어나 엑서소서에 앉아있기 싫으면 곧장 울음을 터트리며 몸을 뻗댄다. 엄마아빠에게 안겨있을 때도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에게 오려고 너울너울 두 팔을 저으며 몸에 힘을 주어 일자로 뻗댄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프면 주먹으로 코가 짜브러질 정도로 얼굴을 부비고, 아악!아악! 비명에 가깝도록 큰 소리를 질러댄다.

그래서 ‘한 성질’ 하겠다고 한다.

 

 

 

 

 

 

 

 

신통한 것은 할머니를 분명히 알아보고, 멀리서도 할머니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또 아빠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안고 있다가 아빠가 안아주려고 손을 벌리면 안 가려고 몸을 홱 돌리고, 어쩌다 아빠가 할머니 힘 든다고 억지로 받아 안으면 할머니에게 오겠다고 울며 뻗대어서 할머니가 다시 안아야 한다. 아빠가 서운해서 ‘도리가 나를 미워해.’한다.

 

아리도 그랬었다. 할머니를 가장 따르고, 음식도 할머니가 입으로 씹어먹였었다. 지금도 할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가끔은 엄마아빠만 챙기고 할머니를 제치는 경우가 있다. 할머니의 서열이 꽁무니다. 핏줄을 어쩌랴하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요녀석! 지금은 할머니가 필요하니까 그렇지?’

‘차라리 안동 방아꽁이를 키우지’ 라는 말이 아니어도, 손자를 고생하며 돌봐줘도 나중엔 다 소용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은 오빠처럼 할머니가 씹어주는 밥을 먹기까지 하는 도리.

도리! 너도 이 다음에 커서 그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