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799-도리의 새벽외출과 달팽이 이야기, 할머니 무릎.

천마리학 2012. 2. 18. 05:24

 

 

 

*2011년 7월 7일(목)-도리의 새벽외출과 달팽이 이야기, 할머니 무릎. 799

 

 

이른 아침에 할머니방으로 외출 온 도리를 안고 일어서다가 갑자기 오른쪽 무릎 가운데 부분이 찌르르 아픈 것을 느꼈다.

할머니가 불면증치료를 위해서 아침에 5시에 일어나는 규칙을 지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른 아침이면 엄마가 도리를 할머니에게 데려온다.

그 시간에 일어나면 엄마아빠 방에서 ‘도리새’의 옹알거림과 소리 지르는 것이 들리고 할머니는 또 엄마가 잠을 못 자겠군 하고 짐작한다.

예민한 아빠도 못 자는 것은 마찬가지. 더구나 요즘 아빠는 회사에서 미국 FDA의 감사가 있어서 대비하느라고 신경을 많이 쓸 뿐 만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가곤 한다.

엄마 역시 잠이 부족하니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엄마는 새벽이면 도리를 안고 할머니 방으로 온다. 도리의 새벽외출이다.

할머니에게 도리를 맡기고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 위해서 돌아간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도리와 논다.

 

 

 

 

“도리, 잘 잤니?”

할머니가 컴퓨터작업을 멈추고 도리를 받아 안으며 말하면 언제나 도리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방글방글. 처음엔 할머니의 침대 위에 뉘어 놓는다. 도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동안 옹알이를 하며 할머니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안아 일으켜달라고 옹알이를 한다. 어쩌다 늦어지면 소리가 커지고 야물어진다.

“도리, 일어나고 싶어? 자, 손! 오빠가 자고 있는데 조용히 해야지.”

아리는 또 새벽 1시경에 올라와 할머니 곁에서 자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들여다보면서 손을 내밀면 도리는 벌써 마음이 급해져서 온몸을 구불텅구불텅 요동치듯 움직이며 허리를 들썩이고, 양 손을 바쁘게 움직인다. 빨리 안아달라는 표현이다.

할머니가 손을 잡아 일으키면 도리는 온몸에 힘을 주어 일자로 일어서버린다. 처음엔 도리의 연한 뼈가 걱정이 돼서 매우 신경을 썼지만 요사이는 익숙해졌다.

할머니가 안고 방안을 서성이면 들썩들썩, 좋아서 옹알이를 하며 두리번거린다. 특히 벽시계와 거울로 된 옷장에 비치는 할머니와 자신의 모습에 눈길이 많이 간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할머니의 실제모습을 살펴보곤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도리가 벌써 거울 속 모습이 곧 할머니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동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18개월 정도 되면 거울속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같다는 인식한다고 되어있는데···^*^

 

 

 

 

 

오늘은 할머니의 허리와 무릎이 여전히 아파서 허리를 똑바로 펴기가 불편하고, 행동을 조심해야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도 계단기둥을 잡고 천천히 내려간다.

오늘 아침엔 찌르르 하던 오른쪽 무릎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고 걸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아리의 데이케어에 가는 날이기 때문에 오전에 수영장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힘겹게 아침전쟁을 치룬 후 9시20분 경에 아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무릎 때문에 걸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데이케어에도 아리또래의 아이는 샤샤와 마이라와 알렉산더가 있을 뿐, 모두 조금씩 아래 나이의 새로 온 아이들이었다. 이제 다음 주 목요일에 한번만 가면 데이케어도 끝이다.

마침 ‘울지마(수리포)’ 아줌마가 일하는 카페가 문을 닫았다. 지난 금요일에도 할머니가 김치를 주려고 가지고 왔다가 문이 닫혀서 되가져갔었는데, 여름이라서 일찍 문을 닫거나 아니면 휴가 중? 휴가가 이렇게 길진 않을 텐데···

 

 

 

휴론의 친구 알렉산더와 함께.

 

 

 

아리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나서 할머닌 로바츠 도서관으로 갔다. 제이가 신문을 가지고 내려와서 잠시 그동안 일어난 신상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올라갔고 할머닌 신문정리를 시작했다.

12시경이 되자 엄마에게서 언제 오겠느냐고 전화를 했지만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서 걷는 걸 줄이려고 집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기다렸다가 저녁때 아예 아리를 픽업해서 가겠다고 했다.

그사이 8층에 올라가 책 <산시로>를 리턴하고 내려와 신문정리를 마치고, 어제 저녁에 박성민의 첫 번 째 소설집 <캐비지 타운>을 끝내고, 읽기 시작한 두 번째 소설집 <마음의 덫>을 읽었다.

시간을 유용하게 쓴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5시에 출발, 스파다이너 에비뉴의 로드(Lord) 도서관에 디비디 2개(Missing 과 아리의 로버트에 관한 에니메이션 영화)을 리턴하고 스파다이너 역으로 내려가서 서브웨이를 타고 세인트 조지 역으로 가서 아리를 픽업했다. 한정거장 사이지만 무릎이 아파서 걸음을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전에 살던 콘도의 우현엄마를 만났는데 할머니의 차림새를 보더니 이젠 완전히 캐나다사람이 되었네요 한다. 배낭에 청바지에 운동화차림. 처음에 왔을 땐 곱게 하셨는데 하면서. 내가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하며 웃었다. 우현이 수영강습 받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4 년 정도의 세월이 그렇게 다른가 보다.

운동장의 모래판에서 놀던 아리를 픽업했는데 운동화 속의 모래를 빼내주면서

“이런 사람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누구지?”하고 물었더니 아리가 깜빡깜빡, 기억해내지 못했다.

할머니의 의도는 아리의 상상력과 기억력을 돋구기 위해서였다. 평소에 사소한 일에도 늘 시도해보지만 기대만큼 되지 않는다. 그래도 반복한다.

“슈즈를 벗어서 털었더니 모래가 점점 많이 쌓여서 산처럼 됐었는데··· 누구더라?”

“유, 씽크!”

아직도 눈을 깜빡이면서 말한다.

“아하, 생각났어.”

“What?”

“엘리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cook, mussel(홍합)! 그 뚱뚱아저씨랑···”

“오우, 엘리스! 생각나.”

그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다. 생각해낸 것이 사뭇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래. 그 뚱뚱 아저씨랑 같이 굴 잡으러 갔던 쿡 아저씨 신발에서 모래가 쏟아졌었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

“할머니, We go to the swimming pool after home?"

스트리트 카에서 아리가 제안했다.

“음 좋은데, 먼저 저녁을 먹고 가자. 엄마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놓았을 테니까. 그리고 배가 고플 테니까.”

“No, I want to go to the swimming pool first.”

아리의 고집이 왜 없을라구?.

“배 안고파?”

“안 고파.”

그러면 그렇지. 한번 낸 제 의견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것도 아리의 특징이지.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는 할망정 굽히지는 않는 고집쟁이다.

 

 

 

 

모자이크에 열중하는 아리.

요즘은 다 만들고 나면 디카로 찍는 것 까지 한다. 

 

 

 

 

그 말이 그렇게 결론짓고 나자 이번엔

“할머니, Do magic”한다.

매직! 해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의미다. 한번 내놓으면 멈추기 어려운 아리. 시달림을 줄이기 위해서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창작했다.

“어, 이거 뭐지?”

차창에 붙어있는 조그만 흠집을 가리키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어, 먼지잖아. 할머닌 달팽인 줄 알았지.”

“달팽이?”

“응. 달팽이, 너 달팽이 알어.”

“스네일.”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맞어. 오늘 아침에 데이케어에서 봤잖어. 그 달팽이. ”

“응, 아리 봤어”

아리는 벌써 할머니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다.

 

 

 

 

아, 목이 아프다!

잠시 피곤해진 목을 쉬는 아리!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그럴만도 하지.

 

 

 

 

 

“어떤 달팽이가 나뭇잎에 붙어서 나뭇잎을 먹고 있었어. 그런데 실수로 미끄러져버린 거야. 아리도 가끔 실수하잖아. 그렇지?”

옆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그만 소리로 아리에게 바싹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곤소곤. 아리가 다음 잔뜩 집중하며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매직은 이미 잊어버렸다. 후후후, 할머니 작전 성공. 하지만 작전을 끝까지 성공시키려면 이야기를 즉석에서 창작해야한다.

“달팽이는 미끄러지면서 깜짝 놀라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달팽이 집속으로 들어가버렸어. 눈도 팔도 모두 쏙 집어넣으니까 동그란 볼처럼 된 거야. 그때 마침 지나가던 개구리가 그걸 본 거야. 어, 이게 뭐야. 하면서 발로 툭툭 건드려 보는 거야. 달팽이는 무서워서 잔뜩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개구리가 차는 대로 굴렀어. 개구리가 또 한 번 발로 툭툭 건드렸어. 달팽이가 그냥 딩굴거든. 이게 뭐야. 돌맹이잖아. 개구리가 그렇게 생각하고는 가버렸어. 달팽이가 한동안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지. 주위가 조용해지자 살그머니 눈을 내밀어서 밖을 살펴본 거야. 무서운 개구리가 가버렸을까 하면서”

할머니는 캡 끝으로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살며시 조금씩 내밀어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 아리는 잔뜩 긴장을 하고 듣는다.

“아하, 아무도 없구나, 그럼 이제 다시 나뭇잎을 먹으러 갈까? 하고 몸을 펼쳐서 움직이는데 어, 이번엔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나는 거야. 누굴까? 달팽이가 잔뜩 긴장해서 몰래 살펴봤어. 어, 사람이네, 아리가 그 사람이라고 하자. 프리텐딩, 어때?”

아리가 끄덕끄덕.

 

 

 

모자이크를 디카에 담기에 열중인 아리!

 

 

 

 

“아리가 달팽이를 봤어요. 달팽이는 더듬이를 집어넣고 죽은듯이 꼼짝도 안 했지. 어, 이거 달팽이잖아. 그런데 왜 달팽이가 여기 있지? 나뭇잎을 먹어야할 텐데··· 하며 달팽이를 나뭇잎이 있는 곳에 갖다놨어요. 달팽이는 생각했어. 아, 이 사람은 좋은 아저씨구나. 응? 아저씨? 아리가 아저씬가?”

“아니요오!”

 

아리가 재미있게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말에도 아이들은 웃기도하고 진지하기도 하다.

“그렇지. 아리는 아저씨가 아니라 빅 보이지. 달팽이를 나뭇잎 아래에 놓아주고 아리가 집으로 갔어요. 달팽이가 생각했어요. 아하, 방금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 고마워요 하고 생각했어요. 만약 아리가 달팽이를 발로 밟거나 돌맹이로 두드려 깨부셨으면 달팽이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여전히 진지하게 듣고 있던 아리가 고개를 절래절래.

“그렇지, 달팽이는 아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달팽이는 죽게 될지도 모르지.”

아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만족감을 표현한다.

“그럼 아리가 공원에 갔을 때 달팽이를 발견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음, 나뭇잎에 놓아요. 숲, 숲에.”

“그렇지. 그래야 아리는 좋은 사람이 되지. 달팽이도 살고, 어! 그런데 벌써 우리집 정류장에 다 왔네. 내릴 준비.”

 

 

 

 

아직도 뭔가 뜻대로 담기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보채지 않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스트리트 카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 아리 아퍼!’ 하면서 두 팔을 뻗어 할머니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애구, 큰일 났다. 겨우 여기까진 잘 왔는데, 할머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한쪽 허벅지를 짚으며 ‘뽁떼, 할머니, 뽁떼!’하는 아리를 할 수 없이 안고 횡단보도를 건너 힘겹게 소비즈 앞 벤치까지 왔다. 정말 할머니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지만 아리는 막무가내이다. 벤치위에 아리를 서게 한 다음 엎이게 했다. 할머니의 백팩 위로 엎힌 아리가 빙긋이 웃으며 할머니의 목을 끌어안는다.

겨우 걸어서 콘도의 로비로 들어섰지만 너무나 힘이 들어서 메일 룸에 갈 수가 없어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왔다. 현관에 들어와서도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아리를 내려놓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엄마가 또 걱정을 했다.

“아리, 또 업혔네, 아리, 아리가 그러면 할머니가 더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