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729-4월 19일-아빠의 생일과 Lord 도서관.

천마리학 2011. 7. 25. 03:20

 

 

 

*2011년 4월 19일(화)-아빠의 생일과 Lord 도서관. 

 

 

엄마가 아침부터 분주한 기색이다. 음식을 준비할 요량. 할머니는 모른 척.

늘 굽던 케이크를 이번엔 스폰지 케잌으로 굽겠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놓을 테니 일찍 오세요 했다. 하지만 정작 아리를 픽업한 오후에는 아리가 더 놀고 싶어 해서 운동장에서 30분이 더 넘게 놀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달래서 스파다이나 역 쪽으로 걷는데 길에서도 여전히 태그게임을 요청한다. 할머니를 꼬셔서 달리게 한다. 그러더니 도중에 피피가 마렵다고 한다.

 

 

 

도리는 아빠생일 선물로 웃음을 준비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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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평소에 봐두었던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그런데 화장실 앞에 막 섰는데 리셉셔니스트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다가왔다. 우리가 낯선 방문객이었던 거다. 하지만 커뮤니티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아이가 피피를 하려고해서 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했더니 뜻밖에도 대답이 ‘고장 났다’고 하면서 두 집만 건너면 도서관이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할머니가 캐나다에 살면서 이렇게 불친절(?)한 예는 처음이다. ‘고장 났다’는 말은 거짓말임을 직감했다. 어쩜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 짐작엔 아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언젠가 들어가 아리를 픽업할 동안의 시간을 보낼 계획을 이미 하고 있었다. 한 걸음이라고 빠르게 피피를 해결해주고 싶어서 들렸던 것이다. 커뮤니티가 거절하리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다. 흐음! 처음으로 캐나다인들도 텃새(?) 같은 불친절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실소했다.

라이브러리로 들어갔다.

 

 

 

아리는 아빠생신 선물로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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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으로 들어가자 꽂혀있는 책들을 보더니 다리를 꼬면서도 피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서가로 먼저 다가가서 책들을 훑어보고 뽑기 시작한다.

“Where is Big Bad Wolf. 할머니?”

역시 책을 좋아하는 아리다. 억지로 화장실부터 다녀오게 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맛있는 거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일찍 가자고 이번엔 할머니가 아리를 꼬셨지만 듣지 않는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후에야 DVD 테잎 한 개를 골라들었다. <Shapes Colors All Around> 빌려왔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티브이에 틀었는데 되지 않았다. 뭔가가 망가진 모양이다. 애고, 내일 반환하고 다른 걸로 바꿔야겠구나!

 

 

 

 

엄마는 사랑과 희망의 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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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아리는 아빠 생일선물로 뭘 살까 궁리하면서 소비즈에 들렸다. 지난 번 하와이에서 생일선문을 미리 사주었지만(엄마와 아빠의 하와이안 셔츠) 그래도 생일날 아무것도 없으 면 맹숭거려서. 뾰족한 게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아하! 눈에 띈 커다란 땅콩봉지.

아리는 엄마가 아빠를 위한 음식을 만들면서 간섭하는 아리에게 비밀이라고 단단히 이르지만 아리는 1초도 안가서 아빠에게 전화해서 고해바치고, 퇴근해오기가 무섭게 그말 부터 해버린다.

“대디! 엄마가 야미 준비했는데 잇이즈 씨크릿!”

그래서 우리 모두를 웃기곤 한다.

할머니가 땅콩을 산 것도 들통이 날것을 각오하고. 돌아오자마자 이층으로 가지고와서 포장하고 카드 써서 뒀다.

 

 

 

 

아리가 그린 선물을 들고 좋아하는 아빠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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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일찍 퇴근해온 아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가득 찬 식탁. 주 메뉴는 삼겹살과 스폰지 케잌.

생일 축하 노래가 한국말, 영어, 불어로 이어지고, 촛불 켜고, 불꽃 초불도 켜고…

할머니가 디카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그 사이에 아리가 깜빡 잊고 있던 땅콩봉지. 가서 가져오라니까 잽싸게 가지고 내려오더니 아빠에게 건네기도 전에 포장을 찢어낸다.

땅콩! 의외의 선물에 모두 한 바탕 웃었다.

엄마가 할머니가 쓴 카드를 한국말과 영어로 읽어주었다.

[벌써 서른아홉 번 째라고? 속상하다. 그깟 나이, 콱 깨물어버려라. 고소하게. 씩씩하게.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활기차게!]

이미 그러고 있다고 아빠가 받아넘겼다. 안 슬프다고.^*^

 

 

 

엄마는 여전히 사랑과 정성으로!

오늘은 특별히 아빠가 좋아하는 한국식 삼겹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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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도 식탁 위 도리용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울지도 않고 눈망울을 초롱초롱 굴리고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예쁜지 모른다. 저도 분위기를 안다는 듯이 가끔씩 꺄약꺄약 소리를 질러서 자기 존재를 확인시키곤 한다. 어른들이 도리를 얼러주기가 무섭게 아리가 다가와서 도리를 독차지하곤 한다. 아리가 도리를 예뻐하는 방식이 때로는 과격해서 염려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도리와 대화하거나 얼러 줄 때 중간에서 지금처럼 끼어들어 막으며 제가 하는 것 외에는 크게 질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쌍떼!”

어른들은 어른들 와인을, 아리는 아리용 와인.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잔을 부딪치고, 즐겁게 왁자한 식사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