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465-한국말 때문에 안 통하는 프리스쿨

천마리학 2009. 8. 19. 00:36

      할머니랑 아리랑 465

 

 

*7월 25일 토-한국말 때문에 안 통하는 프리스쿨

 

 

 

오늘은 느즈막하게 아빠가 차린 브런치를 먹고, 아빠와 넌 네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외출했지.

할머닌 쉬고 싶어서 집에 남았어.

할머니가 요즘 몹시 피곤하단다. 피로가 쌓여선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편두통으로 힘들고, 늘 피곤해. 학교수업도 안 들리고 어떤 땐 토악질이 날만큼 힘들었어.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쉬려고 집에 있었지만, 빨래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숙제도 하고… 시간이 너무나 모자라는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 너랑 지금 웃바인에서 말 경기를 보고 있다고. 우리 지난번에도 갔었잖아.

하이파크에 갈 계획이었지만 스트라이킹 때문에 문을 닫아서 코스를 바꿨대. 요즘은 토론토 시의 곳곳에 스트라이킹이 벌어지고 있단다. 쓰레기 공무원을 시작으로 해서, 토론토 아일랜드 행 유람선, 메트로(아침마다 할머니가 학교가는 길에 목에 C U P E 라고 쓴 종이판을 걸고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본단다) 시청 공무원들… 하이파크의 동물 사육사들까지라는구나.참!

 

웃바인에 도착할 때까지 차안에서 자던 네가 도착해서 말을 보자마자 잠을 깨어 휘니 도도! 하더래. 전화를 바꿔서 ‘아리. 할머니야’ 하는데도 넌 ‘헬로우’ 한 마다하고는 끝, 지금 말 경기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는구나. 흥분한 네 목소리를 멀리서 들을 수 있었단다. 지금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걱정했더니 거기선 지붕아래 있기 때문에 괜찮다구나.

너 좋아하는 말, 실컷 보고 와서 할머니에게 얘기해 줄 거지?

아침에 나갈 때 약속했잖아.

 

 

 

 

토론토 쥬에 있는 통나무 배.

 

 

 

 

 

어젠 너를 데이케어에 픽업하러 갔을 때 네가 할머니를 보자마자 울먹거리면서 할머니에게 달려와 안겼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

“아리, 왜? 무슨 일이 있었어?”

그런데 미쓰 캐런이 얼른, 빠르게 변명하듯 말하더구나. 미안했겠지.

방금, 2분쯤 전에 네가 막대기를 작고 놀다가 넘어져서 이마를 찧었다는 거야. 그래서 네 이마를 살펴보니 왼쪽 이마가 봉긋하게 솟아있고 푸르스럼해져 있더구나. 할머니 마음이 아팠지. 차분히 너를 쓰다듬으며 넘어졌어? 네가 그랬어? 아우이? 하고 말을 걸었지만. 미쓰 캐런이 쉴 틈도 없이 네가 낮에 운동장에서 놀다가 물에 주저 않아 바지가 젖었는데 엑스트라 바지가 없어서 다른 친구의 바지를 빌려 입혔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할머니가 지금 아리가 입은 건 아리바지라고 했더니, 그동안 말려서 다시 입힌 거래.

그래서 빌려 입은 바지를 함께 받아 쌌지. 빨아다 주기위해서.

하지만 속으론 할머닌 불만이야. 왜냐하면 아무래도 사무적으로 대할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아기가 위험하게 놀면 옆에서 지켜보면서 막아주기도 해야 할 텐데 그저 저대로 놀게 내버려 두거든. 물론 항상 너무 보호해달란 이야기가 아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거지. 하지만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하겠니? 속으로만 꿰뚫고 있는 거지.

 

어떻튼 오늘도 아리가 가장 까무잡잡하게 보여. 마치 리틀 인디언처럼!^*^

그런 아리가 할머닌 더 좋아.

아주 개굴스럽게 놀고, 열심히 놀았다는 증거니까.

다만 앞으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주렴.

그리고 지금의 실수들이 너에게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해.

알았지 아리!

 

요즘 아리가 한국말로 토막토막 응답하는 횟수가 늘었어.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단다^*^

자다가도 꼭 한 밤중에 한 번씩 일어나서 밀크 달라고 하고, 흠뻑 침대를 적시는 우리 악동 아리! 그러면서도 다이퍼는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악동 아리!

한때는 노랑색을 가장 좋아하거니 요즘은 블루를 좋아하는 아리!!

할머니가 밀크를 따르면서

“많이 줄까요? 조금 줄까요?”하면, “많이 주까요” 하고,

“놀까요? 도도할까요?”하면, “노까요.” 하고,

“집에 갈까요? 놀러갈까요?”하면, “집에 가까요.” 하고,

“먹을까요? 말까요?” 하면, “먹으까요.” 하는 아리.

할머니의 ‘주세요’ 하고 알려주면 ‘주세요오’ 하는 아리.

할머니의 말뜻은 알아들으면서 문법개념이 없으니까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아리, 아리에겐 영어나 불어보다 한국어가 가장 어렵다.

그래도 아리야, 모국어로 한국어를 꼭 배워야한단다. 불어와 영어도 물론이고. 네가 요즘 말 배우기 전보다는 약간 힘들다는 걸, 약간 늦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 말을 배우기 전엔 사고력이나 이해력도 다른 아기들보다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 할머니가 데이케어에서 네 친구 제이든을 보았더니 자기 부모랑 영어로 간단한 대화가 꽤 잘 되는 것을 봤단다. 그래서 생각했지. 전에는 우리 아리가 월등하게 빨라서 선생님들이 모두들 아리를 스마트 아리!라고 불렀잖아. 그렇다고 아리 네가 뒤지는 건 아닌데, 소통이 좀 복잡해서 더디고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네가 세 가지 말을 혼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선생님들하고도 의사소통이 안 되겠지.

 

 

 

 

 

 

 

 

 

 

예를 들면 네가 배가 고파서 빵! 하고 말했지만 선생님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니까 그냥 넘겨버리는 거야. 할머니가 곁에 있으면, 그게 무슨 말인가? 네가 원하는 게 뭔가?를 알고 너를 돕기 위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애쓰겠지만 선생님들은 그 정도의 성의는 없기 때문이야.

또 네가 물! 하면 선생님들은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넘겨버리고 마는 거야. 어떤 땐 네가 불어로도 하잖아. 꼬숑! 하고 말하면 선생님들은 모르니까 그냥 넘기지. 할머니 같으면 꼬숑? 그게 무슨 말이지? 아하, 돼지. 돼지가 어디 있어? 무슨 색이야? 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겠지만, 데이케어에선 그게 안 되는 거야. 또 네가 ‘뇌’하고 말하면 응? 뇌? 코? 아, 코를 닦아달라고? 이렇게 해결되지만 선생님들은 아니지. 그냥 끝나버리고 무심하게 놔두니까 넌 결국 포기하게 되고… 영어로 하는 애들만 쉽게 접해주니까 넌 왕따 비슷하게 되고.

그렇게 소통이 안 되니까 답답하고, 답답하니까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까 가기 싫어지고… 한동안 데이케어에 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 도 있을 것이라고 할머닌 짐작해.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걸 견디고 겪다 보면 너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도 생기고, 그래서 독립심과 인내심도 생길 거고, 그러면서 차차 네가 세 가지 말을 다 고루 잘 하게 되면 그땐 그야말로 왔다!지.

무슨 말이냐고?

네 세상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아리야, 지금은 힘들지만 조금 지나면 다 잘 할 수 있다는 거, 믿지?

음, 믿는다고?

“당근!”

^*^

 

그래도 한 가지 성공한 거 있잖아.

아리가 늘 ‘할머니’라고 하니까 처음엔 선생님들이 전혀 관심 없다가 지금은 모두 ‘할머니’란 말을 쓰고 대신 아리는 ‘할머니’ 대신 ‘그랜마’라고 가끔 바꿔 부르기도 하잖아. 모두들 ‘할머니’가 ‘그랜마’라는 걸 알게 되고, 할머니만 가면 ‘오우, 아리야, 할머니. 할머니 컴; 하고 말하잖아.

아리가 한국어를 가르친 셈이야.^*^

잘 했다 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