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영상시<실향민 김씨>-39년만의 상봉,이산의 아픔

천마리학 2007. 6. 10. 05:46

 

 

 

        실향민 金씨

                        

                                                                  權    千    鶴



황해도 수안군 율계면 당치리 288번지를

전쟁에 잠시 비워 둔

1922년생의 金씨는

강원도 정선군 북면 고한리 혹은

명주군 강동면 산성우리(山城遇里)에

임시 주소를 두고 살면서

될수록 휴전선 가까운 곳에서만 살면서

바람처럼 떠돌다가

죽어 새가 되리라 되뇌곤 했다


계절은 저 혼자 가는 법이 없었다

가난이 넉넉할 때에는

기다림도 넉넉했건만

고시 공부하는 막내 아들놈 수철이가

어느 새 30을 넘어서고

바람 소리에도 귀가 세워지는

늙으막이 되면서부터는

온몸으로 우는 분단의 통곡 소리가

이명(耳鳴)으로 울리고

갈라진 핏줄에 엉겨 붙는 얼음장을

깨지 못한 이 땅의 피묻은 세월이 한스러워

밤마다 눈물 속에 고향길이 열리더니

새가 될 것 같은 예감으로

묵은 머리털이 빠져나가고

겨드랑이에 스멀스멀

날개가 돋는 이즈막에 와서는

총알이 되어

오목 가슴에 자리잡은 전란의 상처가

욱신거리며 피를 말렸다


박힌 총알을 뽑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만

자꾸만 식어가는 체온을 움켜쥔 손에

꼬깃꼬깃 접혀있는 퇴거용지에

적힌 주소

황해도 수안군 율계면 당ㅊ……


*39년만의 모자상봉-납북자 김홍균(63세)씨와 어머니 이동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