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단의 바람 ―휴전선 權 千 鶴 멈춰있는 시간 위에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염없는 길 끝에 우리들 아버지의 고향이 있으련만 행선지 없는 푯말에 걸려 주저앉은 향수가 검푸른 절망의 웅덩이로 고여있었다 단절의 시대를 사는 마른풀들이 야윈 모습으로 시들어 가는 갈색의 계절 생전에 고향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해 주셨다고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원광 씨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일었다 우리들 아버지는 발이 막힌 채 그렇게 가셨고 한 시대가 또 그렇게 가 버렸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가 보게 되겠지요 안 가도 그만이라는 듯 무심히 흘리는 그의 말속에 빈 시간의 이음새를 넘나드는 바람이 공허하게 불었다 끓긴 길 앞에서 헛김만 뿜어내는 통일은 고물 기차처럼 망연해져 있고 비어 있는 시간 위에서 가슴도 아프지 않은 우리는 그저 말없이 돌아섰다
고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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