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시-망향단의 바람

천마리학 2007. 6. 10. 05:13
 
 

 

     망향단의 바람

             ―휴전선


                                  權    千    鶴


멈춰있는 시간 위에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염없는 길 끝에

우리들 아버지의 고향이 있으련만

행선지 없는 푯말에 걸려

주저앉은 향수가

검푸른 절망의 웅덩이로 고여있었다


단절의 시대를 사는 마른풀들이

야윈 모습으로 시들어 가는

갈색의 계절

생전에 고향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해 주셨다고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원광 씨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일었다


우리들 아버지는

발이 막힌 채 그렇게 가셨고

한 시대가 또 그렇게 가 버렸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가 보게 되겠지요

안 가도  그만이라는 듯

무심히 흘리는 그의 말속에

빈 시간의 이음새를 넘나드는 바람이

공허하게 불었다


끓긴 길 앞에서 헛김만 뿜어내는

통일은 

고물 기차처럼 망연해져 있고

비어 있는 시간 위에서

가슴도 아프지 않은 우리는

그저 말없이 돌아섰다


 

고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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