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430-아리 시도 쓰고...왓 괜찮아? 할머니 화나다!4/6

천마리학 2009. 5. 22. 03:23
 
  할머니랑 아리랑 430

 

 

*4월 06일 월- 아리 시도 쓰고...왓 괜찮아? 할머니 화나다!

 

 

 

오늘 새벽에 할머닌 새로운 시 한 편을 또 완성했단다.

요즘 할머니가 시들시들 몸살처럼 앓으면서도 시가 쏟아져나와서 기분이 좋았단다. 가끔씩 오는 할머니의 습관이기도 하거든. 그걸 <시몸살>이라고 부른단다.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아파도 좋으니까 자주 오길 고대하지. 이번에도 오랜만에 앓았고 30편이 넘는 시를 쏟아내었지. 지금이 그 막판이라고 생각되는데 네가 또 보태주는구나.

땡큐 아리!

아리 네가 영감을 주었거든.

이틀 전인 지난 토요일, 우리 온가족이 닥터 팽에게 갔었잖아. 일 년에 한 번씩 가서 각자에게 맞는 보약을 짓는 의례적인 일이지.

그날, 할머니의 진료가 끝나고 엄마와 아빠를 진료하는 동안 할머닌 너랑 놀았잖어. 놀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논게 아니라 이곳 저곳, 한 시도 가만 있지 않는 호기심 많은 너를 따라다니느라고 할머닌 정신이  없었잖아.

맞지?^*^

 

 

TV는 물론 DVD 플레이어까지 맘대로 조정하는 아리!

 

 

 

 

네가 복도를 돌아서 화장실, 주방, 그리고 주차장으로 통하는 통로, 또 다른 방들... 을 돌아다니다가 닫혀있는 어느 한 방을 열었지. 닥터 팽의 또다른 진료실이었어. 그런데 책상 옆에 커다란 실제크기의 골격구조(skelelton, bone structure in human body)가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창가에 50cm 높이 정도의 혈을 표시한 하얀 인체석고가 있었고.

할머닌 네가 그 해골뼈구조를 보고 놀랄까봐서 신경을 쓰며 네 눈치를 살폈지. 그런데 뜻밖에도 넌 신기한 듯 해골뼈 구조를 잠시 훑어보고

"할머니, 크다 아줌마."

하더니 창가의 인체모형의 석고를 가리키며

"쁘띠 아줌마."(작은 아줌마)   

하는 거야.

와!

그 순간 할머닌 느꼈지.

천사인 너의 눈과 마음엔 무서움이 없다는 것을. 단지 크고 작은 사실만을 사실대로 볼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지식이란 오히려 방해물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지식은 고정관념을 갖게 하고 고정관념은 선입견을 갖게 하고, 그 선입견 때문에 어른들은 가끔 오해도 하고 오류도 범한다는 것을.

바로 그 것을 <지식은 똥>이라는 시로 옮겼단다.

들어볼래? ^*^


 

 

 

 

 

          닥터 팽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동안

          이십칠 개월 된 말썽쟁이가 아리가 여기 저기 통통통통

          뒤따라 다니며 말리느라 바쁜 나를 아랑곳 없이

          진료실 옆의 연구실 문을 벌컥 열었다

          빈 방, 문 옆에 서있는 사람

          실제크기의 인체골격구조

          아리가 놀랄까봐서 걱정스러워 조심스레 살폈다


          이삼초? 잠깐 동안 훑어보던 아리가 뜻밖에도

          "할머니, 크다 아줌마"

          제 키를 훨씬 넘는 인체골격구조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어 창가에 있는 오십 센티 정도의

          혈 자리 표시가 되어있는 인체모형 석고를 가리키며

          "쁘띠 아줌마"

          귀여운 표정으로 작다는 흉내까지 내면서 말했다


          어이없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아리가

          무서운 해골을 보고 놀랄 거라는 생각,

          뼈 조각들로 엮어진 인체구조를 보고

          놀라리라는 지레짐작,

          잘못 짚은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리가 아니라

          많이 아는 나다

          겁을 낸 건 이 십 칠 개월 된 아리가 아니라

          육 십 년 넘게 산 나다


          해골과 뼈들이 

          어떻게 아줌마로 보이는지

          (박제된 뼈의 실제 주인이 여자였을지도…

          그것까지 아리가 꿰뚫어 보았는지도…)

          말 배우느라 서툰 발음, 서툰 문법이긴 하지만         

          무서움도, 여자 남자의 구별도 없고

          '크다'와 '작다'

          있는 그대로 구별하는

          이 십 칠 개월 된 아리 천사의

          마음의 눈과 맑은 영혼 앞에

          지식이 똥이구나


            

 

 

꺄악!!!

재활용 쓰레기 통을 뒤집어 난장판을 만든 아리!

 

 


어때? 괜찮니?

너 때문에 또 다른 시도 썼잖아.

고맙다 아리!


사실 지금 할머니는 너의 아빠에게 화가 나 있는 중이야.

닥터 팽에게 가기 바로 전날 저녁부터였지. 그날 저녁에 할머니랑 놀던 네가 잠시 엄마와 놀고 그 사이에 잠깐 할머닌 컴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엄마랑 놀다가 네가 실수로 머리로 엄마의 이를 받은 거야.

엄마가 비명을 지르고 엎드려 있고 할머니가 놀라서 어정쩡해하는 너를 붙들고

"엄마 아우이, 엄마 쏘리 해라 아리야."

하고 있는데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큰방에서 나온 네 아빠가 할머니에게 안겨있는 너를 확 잡아채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가 괜찮아...하고 한국말로 낮게 웅얼거리면서, 늘 그러듯이 너 때문에 네 엄마아빠와 가끔 부딪칠 때마다 느끼는 감정,(아리가 뭘 알아, 모르고 그런 걸 그렇게 무섭게 한다고 되는게 아냐 하는 생각)으로 어색해져서 막 너를 안는고 하는데, 네 아빠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왓 괜찮아?"

 

 

 

정말 별거별거 다 손댄다!

못 말리는 아리!

 

 

그러고는 씩씩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야. 이어 네 엄마도 들어가 버리고

 

할머닌 어리벙벙한 채로 어리벙벙한 너를 데리고 할머니 방으로 와서 계속 놀았지.

할머니도 그때부터 속으로 화가 났단다. 네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낸 이유는 알지만, 그리고 평소에도 네 엄마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것도 잘 알지만, 할머니에게 그렇게 대꾸를 하며 화를 낸건 용서할 수가 없어. 더구나 평소에도 너를 버릇 잡는다고 네 엄마아빠가 강압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 할머니는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가끔 서로 의견이 달라서 어색한 때가 있기도 한 터지.

그럴 때마다 항상 할머니가 숙으러들고 말았지만 이번 일만은 할머니에게 화를 낸 것에 대해서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내내 생각을 했지. 할머니 옆에서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는 예쁜 네 모습을 보면서도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단다. 네 아빠만이 아니라 네 엄마에게도 화가 났지. 

 

다음 날인 토요일 이른 아침에 아직도 네가 할머니 품에서 자고 있었는데 네 아빠가 할머니 방으로 왔더구나.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할머니가 필요 없다고 네 아빠를 내쫒아 버렸지. 아침식사 때도 할머닌 안 나갔어.

엄마랑 아빠랑 다시 와서 할머니에게 아침식사 하자고 하는데 할머니가 싫다, 나가라 했지. 사실 어린 너에게 다 말할 순 없지만 할머니 속엔 슬픔이 많이 배어있단다.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그런데 웃으운 건 너였어.

이른 아침, 할머니가 네 아빠를 밀어낼 때, 옆에서 보고 있던 네가 덩달아 아빠를 밀어내면서

"아빠, 노 아빠, 아웃 아빠, 나가 아빠!"

속으로 참 민망했지.

그런 상태로 닥터 팽에게도 갔던 거고 돌아와서도 할머닌 계속 냉랭하게 굴었지.

 

 

 

 

샤방샤방! 이 닦기!

아리는 치약을 먹어버린대요!

^*^

 

 

오후에 존 아저씨 왔을 때도 할머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서도 네 아빠에겐 여전히 냉랭하게 했지. 그리고 어제 아침, 네 아빠가 다시 들어와서 사과하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거절했어. 할머닌 평소에도 화를 거의 안내는 편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무섭단다. 그리고 할머닌 화가 나면 말을 하지않는단다. 너도 알아워!^*^

 

할머닌 사우나 룸으로 내려가서 사우나 하고, 스파하고, 샤워하고, 그리고 로비에서 한 동안 앉아서 쉬면서 두 시간쯤 보내고 왔지.

사실 할머닌 어느 정도 화가 풀리긴 했지만 썩 마음이 좋아진건 아니고, 또 이번엔 단단히 혼내주려고 일부러 과장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더 어렵더구나^*^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현관문을 열려는데 현관문의 핸들에 'Sorry OMA'라고 쓰고 네 아빠 사진을 붙인 A4용지가 붙어있는 거야. 웃음이 났지만 참았단다. 그것들을 떼려던 것도 참고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을 지으면서 집안으로 들어섰지. 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표정을 살피느라고 전전긍긍이었어. 네 아빠가 다가오면서 "쏘리 엄마"하는 것을 밀치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어. 사실은 화장실로 가서 수영복부터 널어야하는데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단다.

화장실에서 수영복을 널고 돌아서는데 화장실 문 안쪽에 또다시 'Sorry OMA'라고 쓴 똑같은 그 A4용지와 네 아빠 사진이 붙어있는 거야.

 

 

 

 

 

 

할머니 스스로도 할머니가 너무하는구나 했지만 여전히 본척도 안하고 할머니 방으로 와서 책을 읽었지. 그랬더니 네 아빠가 할머니 방으로 와서 다시 사과하는 거야. 거듭 그러기에 할머니가 말했지. 할머닌 영어가 서툴러서 지금 네 아빠와 이야기 한다해도 서로가 충분히 이해가 안되고 오히려 오해가 더 생길지 모르니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평소에야 그런대로 잘 통하는 편이지만 이럴 땐 할머니가 분명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적당히 넘어갈 수 없기때문에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단다. 그 말조차 제대로 전달이 됐을까 다소 찜찜했는데, 네 아빠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겠다고 하면서 나가더구나. 나가더니 할머니 컴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고, 네 엄마 역시 컴 앞에 앉아서 작업만 하고 있고. 넌 할머니와 거실을 오가면서 재미있게 놀고...

네 엄마도 몹시 속상한 거 알아. 식탁에 생선회를 차려놓은 것도 할머니 때문에 안 먹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거든.


얼마 후에 네 아빠가 종이 한 장을 들고 할머니 방으로 다시 왔어.

거기에 영어문장과 그 옆에 한글로 쓴 10개의 문장었어.

'Dear Oma'로 시작해서 'Your son Patrick'으로 끝을 맺었더구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제서야 할머니가 화가 풀린 척 하면서 분위기를 풀었지.

 

할머니가 아빠에게 처음 화를 낸 거야.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방법이 다를 수도 있지. 그러나 할머니의 육아 방법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설령 틀렸더라도 어른에게 그렇게 화를 내면 안 되지. 잠시 아빠가 실수했다는 것도 알지만, 할머닌 네 엄마를 기른 경험이 있는 엄마이기도 하니까 믿고 따라줄 만도 한데 자신들이 부모라는 생각으로 우선권을 주장하며 우길때마다 할머니가 항상 지고 들어가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종종 있거든.

이참에 할머니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로 생각이나 방법이 다르더라고 서로 의논해서 맞추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게 아냐.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하듯이 이미 네 엄마아빠도 하고 있지. 다만 화가 난다고해서 그렇게 어른에게 낯을 붉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단다. 더구나 실제 상황을 정확히 모르면서 네 엄마의 비명소리만 듣고 화를 내는 것 옳지못해.

가끔 동서양의 문화차이로 적당히 양보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때마다 했던 생각으로, 우리 한국사람들의 예절의 좋은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

어쨌든 네 아빠도 심성이 고운 사람인거 할머니도 잘 알아. 그러니까 금방 화해가 된거란다.


 

 

 

 

 

아리야,

할머닌 참 행복한 사람이야.

너처럼 귀한 천사도 있고, 네 엄마아빠와 같이 착한 가족들이 있어서.

네 엄마아빠가 할머니에게 잘 해줄 뿐만 아니라 잘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할머닌 알지.

그러니까 할머닌 어른노릇도 잘 하려고 노력한단다.

할머닌 행복한 사람 맞지?

훗날 이 글을 보고 또 한 바탕 웃을 수 있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