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이민보답 가능할까

주류사회에 기여·보답하려면 실력 길러야
독서가 그 바탕... 한 권이라도 더 읽자

 

여자가 다가오자 남자가 소리쳤다. “과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이십니다.”

여러 마리 닭 중에서 유일하게 학 1마리가 있다는 말에 앉아서 기다리던 여자들은 심정이 불편했고 막 도착한 여자는 당황스러웠다.

지각이 미안해서 슬그머니 입장하려 했던 참이었다. 기다리던 여자들은 누구도 불평 안했지만 기분은 같았다. “우리는 장닭이고 저 여잔 고고한 학이라고?” 칭찬할 때 입다물 때에 대한 무딘 감각이 저지른 사고였다. 실제로 토론토 어느 단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20131230-3.gif그런데 한마리도 아니라 천마리의 학이 토론토에 있다. 그녀를 거론한다해서 뭇여성 팬의 원성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칼럼필자도 어느정도 인기직업이니까. 바로 시인 권千鶴(천학) 여사를 말한다.

지난 11월초 중국여행을 같이하면서 관찰할 행운을 가졌다. 한국서 등단한 권 시인은 관광버스에 앉으면 습관처럼 여행안내원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안내원이 감춰둔 얘기는 이렇게해서 설명됐고 여사는 답변을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 차안이 흔들려 다소 어지러워질 가능성이 있는데도. 직업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그가 범상하지 않은 문학가임을 알 수 있었다.

“시는 저런 각고의 노력이 바탕에 있어야 쓰여지는 것이구나.” 우연히 생각나는대로 멋진 낱말을 나열하면 시가 되는 것이 아님을 그녀는 드러냈다. 3주 여행이 끝날 때 쯤에는 지친 탓인지 질문이 줄었고 어디서나 들고다니던 필기장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인이 한국서 이민 올 때 집 서가에는 2만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2만 권! 부러운 재산이다. 여사는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대학 강단에 섰던 경력으로 보아서 상당분량을 독파했을 것이고 여기서 시가 나왔다고 보는 짐작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중요시기 수십 년 간을 많은 시간을 요하는 신문제작에 불태운 필자는 책을 마음껏 못 읽은 한을 안고 산다. “나도 언젠가는 …” 다짐하고 기대하지만 2만권이 아니라 1천 권의 장서도 없는 상태가 한심스럽다.

필자가 1년에 10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10년 후면 겨우 100권을 본다. 한국책이라면 속도가 빠르지만 서양책은 역시 거북이. 매월 1권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히틀러가 6천여 권을 읽었다하고, 모택동, 호지명이 도서관에서 자주 철야했다는 사실. 또 시저는 얼마나 독서광인가.

나폴레옹은 전쟁터에나가서도 ‘베르테르의 슬픔’을 애독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다니. 다 아는 얘기지만 모택동의 아버지는 아들이 책만 읽는 것이 못 마땅해서 자주 꾸짖었다. “책 읽으면 거기서 밥 나오더냐. 밭에 나가 농사를 지어라.”

어느날 아버지가 심하게 꾸중하자 모는 호수에 빠져 죽는다고 난리를 폈다. “독서를 못 할바에야 빠져 죽고 말겠어요.” 그가 처음으로 해 본 협박이 들어먹혔다. 그후부터 아버지는 울화를 눌렀고 아들은 협박의 묘미를 알았다. 집권에 성공한 후 그는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가 되긴 했지만 그는 밤이 낮되도록, 낮이 밤되도록 공부한 것은 어찌 보아야 할지.

해마다 12월이 되면 ‘지난 해 감명깊게 읽은 책은? 내년에는 무슨 책을 읽으시렵니까?’ 하는 지상 설문을 본다. 이번 성탄을 앞두고도 이같은 설문이 주류신문에 있었는데 카슬린 윈 온타리오주총리는 캐나다 정치사에 관한 책 두 권을 읽겠다고 한다.

저스틴 트뤼도 연방자유당 대표는 민주사회에서 시민이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책과 전부터 읽어오던 스릴러(탐정) 소설을, 제이슨 케니 연방고용장관은 초대 연방총리 맥도널드의 자서전, 철의 장막의 붕괴, 이에 덧붙여 3부작 소설을 읽겠다고 밝혔다.

욕심도 많다. 책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이들이 그 책들을 휴가중 정말 다 읽을지는 모르겠겠다. 어쨌든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책들을 한 권도 아니고 두 권 이상 씩 읽겠다고 나서는 독서열은 본받을 만 하다.

캐나다의 한인정치인들과 또 교민사회 주요인사들은 어떤지? 우리 1세들은 제외하더라도 1.5세나 2세들은?

캐나다사회에서 존경받는 민족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이민을 받아준 댓가를 몇 배, 몇 10배로 이 사회에 보답하겠다면 주류 인사들보다 더 많은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그걸 어디서 얻나.

바로 독서다. 수준 높은 지식층이라고도 보기 힘든 주류 인사들이 목표한 책의 제목만 보아도 내용은 고사하고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다.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은혜를 갚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