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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천마리학 2010. 8. 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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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삼십 초반의 재미 교포 여성 한 분이 한국 정부나 주미 대사도 못하는 나라사랑의 모범을 보였다. 김하나,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CEAL) 한국분과위원회 회장이 그의 이름과 직책이다. 올해 32세.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독도’의 명칭을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바꾸는 회의가 무기한 연기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인인 그의 어머니는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라는 질책과 독려로 딸을 그 명칭 변경 저지의 일선에 서게 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권천학. 올해 62세이다.

김씨는 캐나다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책임자로 있다. 지난 7월10일 미국 의회도서관 관계자로부터 독도 관련 자료의 분류어를 바꾸는 회의가 16일에 열린다는 말을 듣고, 의회도서관에 공식 항의 문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한국 정부와 한인들에게 공동 대응을 촉구, 결국 ‘회의 무기 연기’를 이끌어냈다. 김씨가 주말 내내 자료 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독도’라는 주제어가 사라지면 상위 분류어인 ‘한국의 섬들’까지 없어지고 ‘일본해의 섬들’로 대체되는 것이었다.

김씨가 이렇게 애쓰는 동안, 정부와 현지 공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며칠 이후에 미국 국립지리원 지명위원회(BGN)가 그동안 ‘한국령’으로 표기해오던 ‘독도-리앙쿠르 바위섬’을 ‘분쟁구역’으로 바꾼 사실이 확인됐다.

독도를 영토 분쟁지역으로 몰아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 기관이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거기에 미국의 공적 태도가 관련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일본의 오래고도 치밀한 로비가 작용한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격노’하여 철저한 경위 파악과 원상회복을 주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되 너무도 허망한 뒷북치기일 뿐이다. 외교통상부나 주미 한국대사관의 뒤늦은 ‘강력 대응’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 뿐이다.

국제무대에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 안보 역량이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는 틈을 타서, 사무라이와 닌자의 나라 일본은 그 전통적인 방식으로 도발했다. 어떤 안전장치가 있었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도외시한 채 일본을 향해 “과거는 모두 잊자.”고 제의한 것일까. 외교 안보에 관한 철학이나 그것을 국정 수행에 도입할 조정 기능 및 총괄 전략도 없이 앞으로 남은 임기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TV 뉴스에 비치는 현재의 독도 사진 중 우리가 세운 표석에, 독도라는 한글 외에 리앙쿠르 록(Liancourt Rock)이라는 영어명이 그대로 병기되어 있는 것이다. 리앙쿠르는 1849년 무인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의 이름을 딴 것이며, 그것이 김하나씨의 사례에서 보듯 영토 개념을 침범하는 용어인데도 우리 스스로 버젓이 그렇게 새겨놓고 있는 판이다.

이미 31년 전부터 미국식 표현이 그러했다거나, 그 화강암 표석이 1953년 10월15일 대한산악회에서 세웠다가 태풍에 멸실된 것을 2005년에 복원했다는 등의 변명은 지금 소용에 닿지 않는다. 필자가 경상북도 울릉군 문화관광과장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앞으로 고칠 계획이라는데,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정부와 관계기관은 이런 문제에 관심도 없고 해결 능력도 없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내치도 내치이거니와 조속히 외교 안보의 큰 틀을 다시 점검하고, 일본·미국·북한·중국 등 거의 모든 이해당사국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외교 최악 성적표’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내 나라의 영토를 수호하는 일이 흔들리면 이 대통령은 어떤 빛나는 업적을 이룬다 할지라도 ‘역사의 죄인’이라는 멍에를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우리 국민 또한, 개개인이 ‘제2의 김하나’가 되어 자기 자리에서의 애국에 몸을 던질 때이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2008-07-31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