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 동안 영화 Martian을 봤습니다. 맷 데이먼 좋아하거든요.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지라 흥행에 대박 성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 줄거리 중 큰 부분이 화성에 고립된 상황에서 식량 조달을 위해 감자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감자가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해도, 아무런 유기질 양분이 없는 사막 모래땅에서는 잘 안 자랄 것 같습니다. 화성에서야 말할 나위 없겠지요. 그래서 맷 데이먼이 쓰는 방법이 자신과 동료들이 남기고 간 응아를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조한센이었나요 ? 이쁘장하게 생긴 여성 동료 우주 비행사가 남기고 간 응아 봉지를 뜯으면서 '에윽 ! 조한센, 니 X 지독해' 라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일텐데, 미국인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농사법인 모양입니다. 나중에 맷데이먼이 우주 생존 교관이 되어 학생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에서도 '응아를 이용하여 농사짓는 거 진짜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지요. 그럼 대체 서양인들은 농사지을 때 퇴비를 안 쓴단 말인가요 ?
제가 카투사로 있을 때, 한번은 평택 지역으로 야전 훈련을 나갔습니다. 그때 치누크 헬리콥터를 처음으로 타봤지요. 당시가 5~6월 정도였는데, 당연히 주변은 논이었고, 온 동네에 퇴비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솔직히 그 퇴비 냄새는 저같은 토종 한국인도 역겨운 것입니다. 아마 평생 농촌에 계시는 분들도 그 냄새를 싫어하실 것 같아요. 같이 훈련하던 흑인 여자 상병과 잡담을 하다가 그 악취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그러면 미국에서는 화학 비료만 써서 농사를 짓냐 ?' 라고 묻자, 그 여자 왈, '당연히 퇴비도 주지. 그러나 사람 응아로 만든 퇴비를 쓰지는 않아' 라고 하더군요.
(백투더 퓨처에 나왔던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탄 마이클 J 폭스를 추격하던 악동들이 퇴비 트럭과 충돌해서 말똥소똥과 범벅이 되는 장면이지요.)
소나 말의 응아도 당연히 냄새는 납니다. 그러나 초식성인 이 동물들의 응아는 사람 것만큼 대단한 악취를 내지는 않지요. 어느 교육 세션에서 만난 목장을 한다는 텍사스 아저씨가 있었어요. 약 50~60세 사이로 보이던 그 아저씨는 우리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목장 투자 비용 뽑으려는 것일 뿐, 투자가 다 끝나면 회사 때려치우고 목장 일만 할 거라고 자랑을 했지요. 그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목장 일은 사실 쉽다, 넓은 초지에 소를 풀어놓기만 하면 지들이 알아서 뜯어먹는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스위스 여행 때 가졌던 궁금증 때문에 소 응아는 어떻게 치우냐 라고 물으니 대답이 '치울 필요없다, 놔두면 그 자리에서 썩어서 목초의 비료가 된다' 라는 것이었고요. 아마 그건 텍사스처럼 소떼 수에 비해 정말 광활한 목초지에 방목 사육할 때나 가능한 것이고, 제한된 목초지에서 곡물도 함께 먹여서 소를 키울 때는 그렇게 놔둘 경우 온 목장이 소똥밭이 될 것 같습니다.
(말똥을 퇴비로 판다는 팻말입니다. 영어로 manure라고 하면 당연히 소똥이나 말똥을 뜻합니다. 사실 닭똥이 더 훨씬 좋은 퇴비이고, 실제로도 닭똥을 쓰기는 쓰는 모양인데,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인기는 없는 모양이더군요. 웹을 뒤져보니 경험있는 미국 농부가 냄새는 지독하지만 닭똥으로 만든 퇴비는 액체로 된 황금이나 다름없다면서 극찬을 하더군요. 원래 구아노라는 최상급 비료는 새들이 수백년간 싸질러놓은 응아가 굳은 것이지요.)
저도 만쭈리님 블로그(http://blog.naver.com/alsn76)를 보고 알았습니다만, 원래 유럽에서는 목축과 농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가축의 응아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것으로 퇴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아는 가축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인간의 응아를 모아다 퇴비로 활용했고요. 유럽식의 경우 단점이, 인간의 응아를 쓸 일이 없으므로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길바닥이고 강이고 아무데나 응아를 내버리는 바람에 온 동네에 악취가 가득했다는 것이고, 동아시아의 경우 단점은 인분에서 비롯된 기생충에 시달렸다는 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워낙 퇴비=사람 응아라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별 거부감이 없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굳이 농촌 전체를 둘러싼 악취 때문만은 아니고, 인간의 응아로 키운 것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한 모양이더라고요. 인간의 응아로 키운 것을 먹으면 전염병 등에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실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아무리 충분히 익혀 살균을 했다고 해도 어떻게 인간의 응아로 키운 것을 먹을 수 있느냐라는 개념적인 거부감 문제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면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중에 시골에 가보고 퇴비 냄새치고는 좀 지나친 악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한국 수퍼마켓에서 파는 채소는 더 이상 먹기가 좀 그렇다 라는 글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설마 미국 농촌에서도 이렇게 인분으로 만든 퇴비를 쓰냐' 라는 질문도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엇갈린 답변이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 안 쓴다!' 라는 단호한 답변들이 많지만, '뭔 소리냐 미국에서도 쓴다, 다만 충분히 처리를 해서 냄새가 안 나는 퇴비를 쓸 뿐이다' 라는 답변도 있습니다. 미국인들도 잘 모르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
미국에서도 일부 인분으로 만든 퇴비를 씁니다. 대표적인 것이 Milorganite(밀로거나이트)라는 것입니다. 이는 Milwaukee Organic Nitrogen에서 따서 만든 상표명으로, 위스컨신 주의 밀워키 시에서 인분이 주성분인 도시 오폐수로 인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것입니다. 이때가 무려 1920년대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친환경적인 오폐수 처리를 생각한 것이지요. 이 퇴비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생활 오폐수를 충분히 발효시킨 뒤 건조시켜 포장 판매하는 것입니다. 물론 유쾌한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응아 냄새가 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본 해외 게시판에서 이 밀로거나이트를 예로 들며 미국에서도 인분으로 만든 퇴비를 쓴다는 것을 설명한 사람이 '왜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는 이런 것을 안 만드는지 정말 의아스럽다' 라고 쓴 것으로 보아, 이런 인분 퇴비가 미국 내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봐요.
인간의 응아로 퇴비를 만드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전통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도, 레미제라블에서 한 챕터를 통째로 파리의 하수시설에 대한 설명에 할애하면서, 그 서두에 '파리는 매년 2500만 프랑을 물에 던진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파리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응아를 중국인들처럼 현명하게 퇴비로 재활용하지 않고 하수구에 그대로 쏟아버리는 것을 한탄한 것입니다.
(레미제라블 당시 세느 강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가던 저 하수도의 주 내용물은 무엇 ? 바로 파리 시민들의 응아 ! 마리우스와 장발장의 몸에 잔뜩 묻어있던 것은 무엇 ? 바로 응아 ! 이렇게 응아투성이인 이들을 삯마차에 태우고 간 자베르는 삯마차 마부에게 운임+청소비로 2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 4개를 줘야 했습니다. 지금 가치로 약 130만원이나 됩니다 !)
하지만 제가 뭐라고 포장을 하던 간에, 우리나라 농촌은 논밭에 거름을 줄 시기에는 온 동네가 지독한 악취로 자욱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퇴비도 충분히 발효시킨다면 그렇게까지 악랄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에 저도 포장 판매되는 반건조 퇴비를 밭에 뿌려볼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거의 냄새가 안나더라고요 ? 웹을 뒤져보니 미생물을 이용하여 충분히 저어주면서 탄소계(짚단, 톱밥 등 식물 부스러기)와 질소계(인간과 소 돼지의 응아) 재료를 섞어 발효시킨 퇴비는 냄새도 별로 안나고, 특히 서양인들이 걱정하는 세균 및 기생충알 같은 것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효열 때문에 약 6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잡균 및 기생충알은 물론 잡초씨 같은 것까지도 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서양 농촌에서 사용하는 composter, 즉 퇴비 숙성기입니다. 충분한 발효를 위해 자주 섞어줘야 하므로 저렇게 회전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사람 응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재래식 퇴비는 저렇게 회전통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농부가 긴 장대로 자주 저어주어야 한다는데, 실제로는 이 작업이 힘들고 또 냄새도 나기 때문에 충분히 저어주지 않아서 미생물을 따로 넣어주어도 잘 발효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는 모양이더군요.)
한국인들보고 미개하다 냄새난다라며 경멸하는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 저는 딱 한번 5월에 일본 농촌에 가 볼 일이 있었습니다. 미야자키의 휴양지였는데, 제 기억으로는 그 인근의 논밭에서 우리나라 같은 악취는 나지 않았어요. 원래는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인분으로 만든 퇴비를 많이 썼답니다. 지금은 화학 비료를 주로 쓰고 재래식 인분 퇴비는 거의 안 쓴다고 하네요. 그 계기는 산업화에 따른 화학 비료의 공급에도 있습니다만, 의외로 그 주된 계기 중 하나는 미국인들에 대한 눈치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들이 그런 인분 퇴비의 관행을 보고 기겁을 하며 '일본에서 재배된 농산물은 먹지 않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강대국에 대한 눈치를 많이 보며 서구를 따라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일본인들이 인분 퇴비를 안 쓰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물론 일부 자존심 있는 일본 농민들은 인분 퇴비를 여전히 쓰고 있답니다.
(유쾌한 일본인들의 새로운 예술 장르... rice paddy artwork 랍니다.)
PS. NASA 과학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화성의 흙에 인분을 섞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은 하답니다. 그러나 생 인분을 그대로 섞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고 독성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인분을 회전하는 통에서 몇개월간 충분히 발효시킨 뒤 쓰는 것이 좋다는 단서를 붙인 것으로 보아... 걔들도 어쩔 수 없는 서양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