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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권천학의 문학관-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고싶다.-문학마실 2013년 3월,

천마리학 2013. 7. 2. 10:19

 

 

 

2013년 3월 '문학마실'이 선정한  <이달의 작가>

 

 

  나의 문학관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고 싶다   *    權  千  鶴

 

 

문학관이라고 특별한 것이 있진 않다. 그러나 특별한 것 없이 특별하고 싶다.

한때는 거창하게 버거울 정도로 문학에 대해서 심오하게 생각했었다.

문학이 과연 구원인가? 하다보면 절망이었고, 절망이다, 하고 보면 구원이었다. 그렇게 문학과 어부렁더부렁 젊음도 보냈다. 마치 적과의 동침 같았다.

지금도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방법을 바꿨다.

내가 문학에게 다가가기만 할 게 아니라 문학이 나에게 다가오게 하고 싶다.

 

그저 열심히, 세상보다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그러나 너무 많이 뒤지지 않게, 한 두 발짝쯤만, 적당히 떨어져서 훑어보고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세상 귀퉁이를 뜯어먹으며 맛본 간을 짭조름하게 내 글들 속에 넣는다. 넣어서 사람들이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길 바란다.

 

나에게 문학 행위는 어쩌면 옛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부용(芙蓉)의 과수원에 선 아침, 나무에 물 오르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던 친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는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나를 핀잔했고, 나는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못 듣는 친구가 답답했었다. 때로는 말귀 못 알아듣는 세상을 향하여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때로는 세상이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니까.

 

이제는 친구와 같은 동행이다. 문학과 화해의 길이다.

 

 

Seasons Gone By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늘 한계에 시달렸다. 능력이 없어서였다. , 명예, 배경, 학문 기타 등등을 통틀어서 세상살이에 대한 총체적인 무능력, 그래서 늘 허기졌고, 미안했다. 그렇게 지금 내 앞에 남아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해버렸다.

문학에 대해서도 다를 바 없다. 문학에게 늘 미안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문학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다. 살아버린 시간보다 더 많이, 할 수 있는 만큼 전력투구함으로서 문학에게 오래 동안 품어온 미안함을 덜고 싶다. 나의 의견도 섞어가며 조율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시인 초년병 시절,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나는 한 선배시인과 대화 중에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 후 그 선배는 나의 그 말을 자신의 시집 서문에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겠다는 후배시인의 말을 새겨본다고 적은 것을 봤다.

 

사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싶다.  매우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싶다. 그래서 늘 허기졌다. 허기지다. 그러나 이제, 진정으로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고 싶다.

나의 자작시 유명한 무명시인처럼,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문학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