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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새 킨더가든 방문, 할머니의 어금니, 번안 빅베드울프

천마리학 2012. 2. 15. 06:50

 

 

 

*2011년 7월 4(월)-새 킨더가든 방문, 할머니의 어금니, 번안 빅베드울프. 797

 

 

오늘도 할머니와 아리는 오전에 옥상의 수영장에 가서 한 시간정도 보냈다. 새 콘도로 온 이후 할머니는 어제부터 처음 가는 수영장이다. 아리는 작년 여름, 할머니가 한국에 간 사이에 엄마아빠랑 다녔다. 먼저 살던 콘도의 수영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노천, 아니 공중에 있어서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주로 젊은 비키니족들이 모여들었다.

어제는 물속에 잠기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오늘은 팔걸이 공기주머니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아리가 물속에 13을 세는 동안 잠수할 수 있었다. 또 물과 많이 친해진 듯 했다.

 

10시에 문을 여는데 그 시간에 맞춰서 갔더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또 바로 앞건물의 그림자가 해를 반쯤 가려서 좋았다. 깊이도 얕고, 핫텁(hot tube)도 있어 더운물, 찬물을 교대로 왔다갔다하며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후에 아리의 새 킨더가든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아리와 엄마와 도리, 그리고 할머니가 스파다이너 어베뉴에 있는 킨더가든에 갔다. 엄마가 미리 전화로 알아보고 오늘 방문해서 직접 체크해보기로 한 약속대로였다. 괜찮으면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옮길 작정이다. 만약 킨더가든에 다니게 되면 아울러 데이케어도 다닐 수 있고, 비용이 지금 다니는 휴런보다 거의 50%에 가깝게 싸다. 아리와 도리, 두 아기를 보살펴야하기 때문에 힘도 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물론 학교 레벨로 따지면 지금 다니는 휴런학교가 상위그룹이지만, 머지않아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음으로 길면 이 삼 년 정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한 것이다.

엄마가 출근을 시작하면 할머니 혼자서 돌보기엔 너무 어렵고 그렇다고 네니를 두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상 주로 중국계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다. 시설을 돌아보고 담당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괜찮아보였다. 오히려 여름방학동안의 스케줄이 좋았는데, 만약 다니기로 결정이 된다면, 곧 ‘건이’가 한국에서 오기 때문에 여름방학동안에 등록하는 것은 미루기로 하고 9월 학기 시작부터 다니게 될 것이다.

 

 

 

 

 

 

 

 

 

근처에 간 김에 챠이나 타운의 챠이나 센터에 가서 할머니의 여권갱신용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엄마는 스튜디오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도리에게 젖을 먹였고, 그동안 할머니와 아리는 쇼핑센터를 둘러보고 아리의 여름 샌들을 샀다. 샌들 역시 발에 꼭 맞는 사이즈는 없었다. 지난번에 엄마아빠가 사준 ‘목욕탕 슈즈’(플라스틱 슬리퍼-할머니는 그렇게 부른다.)가 커서 달리기 좋아하는 아리는 운동장이든 놀이터이든 가기만 하면 슈즈를 벗고 양말 발로 논다. 그래서 할머니는 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새로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꼭 맞는 사이즈는 없고 약간 큰 사이즈만 있었다. 그래도 끈으로 묶기 때문에 괜찮아서였다.

“맞어, 맞어.”

달려보라고 하는 할머니의 주문에 따라 쇼핑센터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갔다 오면서 아리가 좋아서 하는 말이다.

 

퀸스트리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리의 청에 의해서 껌을 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껌을 씹다가 할머니의 어금니가 쪼개졌다. 왼쪽 위 안쪽에서 두 번 째 어금니. 불상사!

집에 돌아오자마자 닥터 빅아리(모하주)의 치과에 연락을 했더니 바로 3시 30분으로 예약을 해줘서 마침 이번에 온 할머니의 시집 <2H2 + O2 = 2H2O>를 가지고 다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캐씨와 빅아리. 매우 반가워했다. 시집을 주었더니 더욱 고마워했다.

 

 

 

 

 

 

 

 

떨어져나간 부분의 어금니를 때우면서 훑어보더니 또 다른 두 세 개의 이도 금이 간 것이 있어서 때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에도 들은 바 있고,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의 치과에서도 말했던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엔 오늘 깨진 것만 때우고 2주쯤 지난 후에 의향이 있으면 다시 가서 마저 때우기로 했다. 앞으로는 절대, 부드러운 음식만 먹도록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으! 할머니의 몸은 이제 고물인가 봐!

그런데 아리가 제 놀이에 빠져있으면서도 사이사이 할머니가 걱정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 손을 잡아당기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기도 하고, 할머니, 웟츠 롱? 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진료대에 눕자 다가와서 할머니 손을 잡더니 ‘할머니, 괜찮아.’ 하고 위로하며 손에 힘을 준다. ‘그래, 괜찮을 거야. 아리가 곁에 있으니까. 고마워.’

빅 아리가 진료 도중에 바짝 다가서서 들여다보는 아리에게 ‘자, 내가 숫자를 세라고하면 세어라.’ 하고는 잠시 후에 ‘자, 한국말로 열까지 세어라.’ 하며 멈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리가 열까지 세고나자 빅아리가 ‘오케이, 굿.’ 하고는 다음 처치를 하고 ‘자, 이번엔 영어로 열까지 세어보아라.’

“원, 투, 쓰리, 퍼, 파이브···”

“오, 굿. 아리가 세어주니까 치료가 잘 되는구나. 자, 이번엔 프랑스어.”

“앙, 더, 트아, 꺄트, 쌩크, 씨스, ·····”

아리가 진지하게 센다.

 

 

 

 

 

옥수수를 담아주었었는 옥수수는 어디로...?

 

 

 

 

 

“오, 아리가 아주 잘 세어서 할머니 치료가 아주 잘 되었다. 고맙다.”

아리가 안심한 듯 좋아라 한다.

할머니가 진료대에서 일어나 입을 헹구고 빅아리랑 모두 진료실 밖으로 나오는데,

“캔아이 해브 썸 토이즈?” 한다.

모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복도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캐씨까지.

“슈어!”

캐씨(Kathi)가 아리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더니 장난감상자를 들고 나와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다. 아리는 제 몫으로는 파란 색 팔목시계를 고르고, 도리 몫으로는 분홍색 조그만 돼지저금통을 골랐다. 아리는 언제나 도리를 챙긴다.

하긴 지하철에서 트랜스퍼 티켓을 뽑을 때도 할머니 것은 카드가 있으니까 필요 없다고 해도 언제나 할머니, 아리, 엄마, 아빠 앤 도리! 하면서 5장을 뽑곤 하는 아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방으로 들어가 잠시 조용하던 아리가 문을 열고 나와 그림 두 장을 보여준다. 방금 그린 것이다.

“이게 뭘까?”

 

 

 

 

콧잔등에 요쿠르트를 묻히고도 예쁜 우리 도리!

 

 

 

 

할머니가 그림속의 사람 입 양 옆에 빨갛게 그려진 부분을 가리키면서 물었더니 아리가 설명한다. 할머니 입이고 빨간 것은 빠진 할머니의 이라고 한다. 또 한 장의 그림은 크게 그려진 사람은 아리이고 뒤편으로 작게 연두색으로 그려진 작은 얼굴들은 오늘 다녀온 데이케어의 친구들로, 아리를 보고 저게 누굴까? 저게 누굴까? 하며 바라본다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표현한 것이었다. 엄마에게 그림을 보게 하면서 한 바탕 그림이야기를 했다.

“이거 봐, 엄마야. 아리가 그렸는데 정말 잘 그렸구나.”

“그러게요. 정말 아리가 참 잘 그렸네요. 아하, 엄마가 선생님하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거기 친구들이 아리를 누굴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바라봤었구나.”

“녜에!” 하면서 아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 아리가 아래층에서 “할머니이~”를 부르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후닥닥 할머니가 내려갔다. 평소에도 잠귀가 밝은 할머니가 아리의 소리에는 더욱 귀가 밝다.^*^

아리가 제 방에서 훌쩍이며 커튼을 들추고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들자마자 할머니를 파고들며 옷깃을 잡는다. 할머니의 옷깃 어딘가를 꼭 손가락으로 잡고 손가락 끝으로 비비듯 움직이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의 버릇이다.

“할머니, 얘기.”

눕자마자 마음이 안정된 아리는 이야기를 주문하며 더 가까이 할머니에게 파고든다.

 

 

 

 

누가 먹었을까?

먹다남은 옥수수 접시를 들고,

생각에 빠진 도리.

 

 

 

 

 

“무슨 얘기해줄까요?”

“할머니 씽킹.” 할머니가 생각해서 하라는 것이다.

“아리가 생각해봐야지.”

“음! 유 씽킹, 유 두 잇.”

여전히 눈을 감은 채다.

“요런 깍쟁이 아리!”

하고 볼을 살짝 튕기면 빙긋이 웃으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좋아, 그럼 빅베드 울프 할까?”

아리가 끄덕인다.

“옛날 어떤 마을에 큰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는 동물들이 많이 살았어요. 원숭이, 다람쥐, 토끼···”

“산말, 산소!”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던 아리가 끼어든다. 아리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왜 안치느냐는 뜻이다.

“아하, 그렇지, 산말, 산소 그리고 맷돼지, 여우, 사슴, 거북이 음 그리고·····”

자주 바꿔가면서 늘 들려주던 할머니가 바꾸어가며 꾸며내는 <빅베드 울프>를 들려주기 시작하면 아리는 대만족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필휘지!

할머니를 그려낸 아리의 그림.

빨간색이 할머니의 빠진 이라네요.^*^

 

 

 

 

평화!

이 세상의 모든 평화 중에서 이런 평화만 한 게 또 있을까. 아리가 할머니 품에서 느끼는 아늑함과 안심으로 빚어내는 평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아기와 엄마가 만드는 평화가 이 세상 최고의 평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할머니는 정말 감사하고 좋다.

할머니가 흐뭇해서 잠시 숨을 다듬고 있는 사이를 못 참고 아리가 독촉한다.

“할머니 얘기.”

“사슴, 여우, 멧돼지, 늑대, 그리고 저 아래 늪에 사는 거북이까지 다 모였어요. 언제나 산속 동물들은 모두 친구가 되어서 숲속의 놀이터에 모여 함께 놀곤 했어요.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지요. 오늘은 누가 장기자랑을 할래? 하고 친구들이 서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토끼가 번쩍 손을 들었어요. 오늘은 내가 할게. 난 팔짝팔짝 잘 뛰잖아. 너희들도 알지? 그래그래. 넌 깡충깡충 잘 뛰잖아.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말했어요.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얼마나 빨리 저기 있는 바위까지 갔다 오는 지 보여줄게. 좋아 좋아 친구들이 박수를 쳤어요. 하나, 둘, 셋! 토끼가 바위 위로 올라가서 막 뛰어내리던 순간이었어요. 악! 갑자기 토끼가 비명을 지르며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요. 모두들 놀라서 바라보니 늑대가 어느 새 바위 뒤에 숨어서 토끼의 귀를 잡아당긴 거예요. 토끼가 아픈 귀를 잡고 엉엉 울었어요. 늑대, 넌 왜 내 귀를 잡아당긴 거야? 늑대가 말했어요. 재미있으니까. 뭐라고? 친구들이 모두 늑대를 바라봤어요. 재미있잖아. 하고 늑대가 말했어요. 그렇지만 토끼가 위험하잖아, 그리고 얼마나 아프겠니? 친구들이 말했지만 늑대를 빙글빙글 웃기만 하는 거예요. 늑대가 잘한 걸까요 잘못 한 걸까요?”

 

 

 

 

 

 

이 그림은 오늘 처음 방문한 킨더가든을 그린 것.

앞의 두 사람은 아리와 할머니이고,

뒤의 연두색 아이들은 'Who is that?' 하며 소근소근 아리를 가리키던 아이들이라나요.

서슴없이 즉석에서 슥슥슥 그려내는 아리의 그림솜씨가 엄마와 할머니를 놀라게 했답니다.

 

 

 

“잘못.”

아리가 짧게 대답하고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 늑대가 잘못 한 거지. 뛰어내리려고 하는 토끼 귀를 잡아당겼으니 토끼가 얼마나 아프겠어. 그리고 또 토끼가 굴러서 다치게 되니까 그건 위험한 일이잖아. 친구들과 놀면서 위험한 짓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은 안 좋은 일이지. 토끼가 몸에 묻은 흙을 털며 말했어요. 늑대, 넌 나빠, 지금부터 넌 내 친구가 아냐. 너하고 안 놀아! 그랬더니 늑대가 빙글거리며 말하는 거예요. 흥, 나하고 안 논다고? 좋아. 그러면 난 다른 친구들과 놀지.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늑대를 좋아할까?·····”

어느 새 아리는 잠이 들어 말이 없다. 할머니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잘 자거라 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