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아리의 급한 성질과 우김질
*2012월 1월6일(금)-아리의 급한 성질과 우김질 964 Celsius 7°~-1°, 2:00am 현재 4°, Cloudy.
요사이 바빠서 뜸했다. 날씨도 추웠다. 사흘 전에 영하 15도,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로 갑자기 추워졌던 날씨가 어제부터 풀렸다. 오전에 아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숖 <다크 호스(Dark Horse>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최문희의 <크리스탈 속의 도요새>의 중편 <갈색의 ***>을 다 읽고 11시 50분에 출발, 집으로 와서 점심 먹고 저녁 식사 준비. 어제 아리와 약속한 대로 피시케익볶음을 했다.
오후에 픽업하러 갈 때 스쿠터를 오랜만에 가지고 갔다. 아리가 성질이 매우 급해서 탈이다. 무엇이든 무조건 자기 생각대로 해야 하고, 안되면 악을 쓰듯 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기어이 관철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너무 심하다. 우김질 또한 심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제밤에도 그랬는데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스파다이너 에비뉴의 광고판 아래에서 장난치는 도리. 아유 무서워라!
아침 7시경, 모두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할머니가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리가 살며시 나와서 이층으로 잽싸게 올라간다. 할머니가 일하다말고 엇! 누구야? 놀라는 기색으로 바라봤다. 그 순간 계단의 중간쯤 올라갔던 아리가 왁 울음을 터트리며 짜증이다. 할머니 몰래 살며시 올라가려고 했던 모양인데 들켜서 실망과 화가 겹친다.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해도 물고 늘어진다. 달래도 소용이 없다. 일단 저질러진 일이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여러 차례 반복하며 달래도 그냥 고집이다. 할머니가 바라봤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운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울부짖는다. “할머니는 아리 방에서 뭔가 휘익! 지나가니까 도깨비다람쥐가 우리 아리를 잡아먹었나? 하고 걱정이 돼서 바라봤다. 아리가 도깨비 다람쥐에게 잡아먹히면 좋겠어?” 울음을 잠시 멎고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런 식으로 겨우 진정시킨다.
우리 콘도의 맞은편 건물의 난방용 불꽃난로 앞에서
저녁 때, 엄마랑 도리랑 모두 함께 돌아오는데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고 소포를 찾아서 집으로 들어오는 찰나, 갑자기 생각이 난 모양이다. 일요일, 제 생일날, 브라운 상자가 왔었는데, 그 상자를 자기는 연 기억이 없다. 어디 있느냐? 고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도 황당하다. 하지만 아리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부드럽게 이야기를 받아준다. 글쎄, 엄마는 생각이 안 나는데... 뭘까? 그때 다 아리가 열었잖았나? 아, 깨띠아 고모가 보내 준 것인 모양이구나. 그거 니가 열었잖아. 책하고 뭐가 있었잖아... 그래도 소용없다. 아니라는 것이다. 그 상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 왜 자기 선물이 없어졌느냐는 것이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엄마가 이야기를 바꿨다. 아하, 할머니에게 온 것을 말하는 모양이구나. 그건 할머니 약이야. 그래서 할머니 드렸지. 결국 끝을 내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가 도리를 안고 재우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늘 따라 도리가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들었다가 집에 들어와서 깨어나더니 계속 잠이 부족해서 투정을 부리던 참이었다. 엄마가 도리를 재우러 올라간 사이에도 아리는 할머니에게 그 상자 이야기를 한다. 집요하다. 병적일 만큼. 놀랍고 놀랍다. 아이들이 이러는 건가? 의심이 간다.
할머니가 설명한다. 아리야, 할머니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야. 우리 잘 때 할머니가 아리더러 할머니 얼굴에 약 발랐으니 만지지 말라고 했지? 끄덕끄덕. 그거였어. 그래도 의심쩍어하며 계속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리야, 할머니가 어제 약속한 것 뭐지?” 할수없이 화제를 바꿨다. “몰라” 궁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제 할머니가 피시케잌을 준비해놓는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지금 할머니가 맛있게 피시케잌을 만들어놨으니까 밥을 많이 먹어야 해. 알았지? 먹을 거지?” 그런 식으로 겨우 진정시켰다. 저녁에 또 그런 일이 벌어졌다.
7시 40분경, 자러 들어가서도 꾸물대는 아리에게 양말을 벗게 하고 옷을 벗게 해도 듣지않고 꾸물댄다. 할 수 없어 할머니가 자, 열까지 센 다음 불을 끌 거야. 그러니까 빨리 해. 알았지.“ “노우, 노우,” 하는데 할머니가 카운트를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엣···여섯, 일곱”까지 갔을 때 아리가 “던 카운트 파이브!”하고 악을 쓰듯 울부짖으며 재빨리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열까지 세기도 전에 아리가 이미 다 했잖아! 하고 좋은 뜻으로 말하는데, 계속해서 ‘아이 원트 던 카운트 파이브!’를 외치며 울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스위치 쪽으로 간다. ‘불 켜지마!’ 할머니가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기어코 불을 켜고, 왜 할머니가 다섯을 세었느냐고 따진다. 할머니가 열까지 센다고 했지 않느냐, 그리고 아리는 일곱에서 다 했지 않느냐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만 하면 안 된다고 하며 이제 자자, 하고 불을 껐더니 아리가 다시 켜려고 하기에 ‘켜지마!’ 했지만 기어코 다시 켰다. 정말 고집인지 뭔지가 세다. 그럼 할머니는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며 동동, 여전히 왜 다섯을 세었느냐고 따지며 손과 발을 굴린다.
한국에서 온 우혁이 오빠랑 노는 도리.
집요하다고 할까, 고집 세다고 할까, 아니면 나쁜 버릇이라고 할까, 이제 다섯 살 아이에게 말도 아닌 소리다. 그런데 다섯 살 아이가 이래도 되는 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그런 점이다. 이미 지나간 상황을 두고두고 따지는 버릇. 재연을 해주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것 때문에 전에도 엄마가 여러 번 화가 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바짝 더 그렇다. 결국 할머니가 그럼 너 혼자 자거라. 할머니는 올라갈 거야 하며 나와 버렸다. 뒤따라 나오며 발을 동동, 악쓰는 소리, 거실에서 지켜보는 엄마아빠의 시선이 불편하다. 이층으로 그냥 올라오면서도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억울하고 답답하다. 결국 유야무야. 엄마가 달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조용해졌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속이 불편할까? 할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때때로 어려운 순간들이 생기고 그럴 대마다 할머니는 설 곳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보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혹시 다른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혹시 편집증? 잘못된 버릇? ··· 별별 생각이 다 들어 불편하기만 하다. 우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한번 지나간 것을 가지고 되풀이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끝까지 딴지를 걸고 떼를 쓰는 것. 사과를 해도 달래어도 듣지 않는 것. 끝까지 따지며 딴지를 거니 이건 억지다. 완전 억지. 그래서 해결책이 없다. 왜 이런 성격이 되었을까? 두 가지가 집힌다. 하나는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편하게만 해줘서. 또 하나는 평소에 이론 센 엄마가 규칙을 들이대며 강요하는 것 때문에. 엄마도 할머니는 숨 막힐 때가 많다. 만약에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해도 엄마는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며 할머니를 원망할 것이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숨 쉬며 자책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게 엄마의 스타일이니까. 할머니의 오냐오냐에 대해서도 엄마와 할머니의 약간의 시각 차이는 있지만 엄마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지 어찌 해볼 수가 없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