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아리랑 425
*2월 27일 화-영특한 아리, 요즘은 이상해!
아리는 영특하고 호기심이 많은 건 이미 잘 아는 사실이지. 좋은 점이고.
오늘 저녁에도 혼자서 벤취의자의 팔걸이에 올라서서 DVD 플레이어를 조작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끼우고…
네가 어쩌다 그렇게 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넌 이미 플레이어 조작을 알고 있거든, 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정확하고.
상자 위에 올라서서 책장의 문을 열고 많은 DVD와 책들 사이에서 넌 용케도 네가 찾는 걸 짚어내곤 그걸 할머니에게 꺼내달라고 하지.
그리고는 그걸 TV 옆의 벤치의자 팔걸이 위로 올라서서 TV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고 빼고… 하는 기본 동작을 다 알고 있어. 오늘 저녁엔 네 엄마가 플레이 버튼을 알려주었지. 그랬더니 넌 그대로 네가 좋아하는 DVD들을 플레이 시키곤 했잖아.
또 요즘 너의 콩고말도 여전하지. 몸짓과 눈짓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들을 네 식의 단축코드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 때론 못 알아듣는 게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말야^*^
그런데 너의 발음도 이상해졌어. 전엔 비교적 정확하게 하던 발음들이 요즘은 이상하게 달라져서 어떻게 생각해보면 더 퇴보한 것 처럼 느껴진단다.
‘밀크’하던 것을 ‘모얼크’라고 하고, ‘고 추레인’하던 것을 ‘거취’하고 하고 ‘비아 레일’하던 것을 ‘빌’ 하듯이.
‘모얼크’라고 할 때 ‘밀크’하고 고쳐주면 넌 ‘미울크’하지.
그래서 할머닌 전에 익숙하게 말하던 ‘씨엔타워‘를 너에게 실험해봤지. 그런데 넌 아주 이상한, 알아들을 수없는 발음으로 말하는 거야.
모든 것을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따라하도록 하긴 하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아.
그래도 발음이 그런 건 지금 막 말 배우는 시기에 있는 네가 3 개 국어를 동시에 배우다보니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겠지. 그래서 다소 안심하고 있긴 하다만, 솔직히 말하면 그 외에도 아리가 많이 달라졌어.
어떻게?
글쎄…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할머니 생각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자존심 강한 너의 엄마가 불쾌해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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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머니가 지난 연말전후로 한국에 다녀온 이후 느낀 거야.
너, 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버릇이 생겼더구나.
첫째 걸핏하면 울고, 짜증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고 하는 건 좋지만 걸핏하면 울기부터 하니 쯧! 할머니가 보기엔 네가 놀기 좋아해서 잠이 부족할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애.
둘째, 늘 엄마에게 안기려고만 해.
아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안기려고만 하니까 문제지. 밀크를 먹을 때도 안겨서 먹으려고 하고 식사시간에도 안겨 먹으려고 하고. 이것도 할머니 생각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야. 왜냐하면 잘 때 엄마아빠 사이에서 자니까 네가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겠지.
셋째. 밥을 잘 먹지 않아.
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 무엇이든 잘 먹고 많이 먹고, 성격도 밝았는데 요즘은 먹는 걸 잘 먹으려들지 않고 습관도 나빠졌어. 엄마에게 안겨서 먹으려고 하거나 할머니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 음식을 차지한다거나, 음식그릇에 손을 집어넣고 음식을 마구 뿌리고 흩트리고.
데이케어에서 먹고 와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물물이 잘 먹을 때도 있고 잠시 덜 먹을 때도 있으니까 좀 더 두고 봐야하겠지. 그런가하면 잠이 부족하거나 일어나자마자 입맛이 돌지 않을 수도 있지.
제발 잠 많이 자고 잘 먹었으면 좋겠어 아리!
어떻튼,
아직은 어린 아기니까 크게 걱정할 건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잘 먹고, 성격도 좋다는 것이 너의 특징이며 장점이었는데 지금은 잘 안 먹고, 성격도 달라졌어.
할머니가 이렇게 저렇게 시키고 싶어도 너의 엄마아빠의 주장이 강하니까 할머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또 할머니의 방법이나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달라진 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란다.
어떡하지?
다이퍼 가는 걸 매우 싫어해서 갈 때마다 곤욕이지.
이건 처음부터 그랬고 할머닌 너무나 위생을 생각하는 너의 엄마아빠가 다이퍼를 갈 때마다 물티슈로 궁둥이를 철저히 닦느라고 강제로 했는데 할머니 생각엔 그게 너에게 싫다는 관념을 심어준 것 같아. 그 섬뜩하고 차거운 느낌 때문에 다이퍼 가는 것이 싫어진 거라고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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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요즘 너의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뽀로로 친구들이고 관심사는 말이지.
엊그제 할머니랑 데이케어에서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만난 기마경찰을 보고 너무 신나하면서 떠날 줄을 몰랐잖아. 집에 와서도 온통 말 얘기였지. 그래서 어젠 엄마가 말그림을 선물로 주었고 할머닌 그걸 모두 빳빳한 종이에 붙여서 가지고 놀게 했지.
또 네가 먹는 올개닉 소이밀크의 박스에 있는 밀크컵의 그림을 8장이나 오려서 주었지. 이 모든 것들이 네가 에이비씨 등 컴퓨터의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프로그램을 줄이기 위한 작전이란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프로그램 시청이 너로 하여금 내향성이 되게 하고 수줍음을 더 많게 할 염려가 있어서야.
넌 다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뒤로 숨고 입을 다물고 탐색만 하다가 엄마나 할머니가 “세이 하이!”하고 말을 시켜도 하지 않다가 그 사람이 돌아서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하이!” 하잖아. “크게!” 하면 조금 톤을 높여 대고 “하이!”하지.
‘하이’보다 먼저 네가 불쑥 하는 말은 ‘바이!“지.
넌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한가봐. 빨리 헤어지기만을 원하잖아.
주눅 든 사람처럼 목소리가 작아지고 뒤로 숨고…
뭐가 불안할까?
왜 그럴까?
아리야,
부디 잠 많이 자고, 잘 먹고, 큰 소리로 말하는 아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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